민란의 추억... 윈난 소수민족의 설움 간직한 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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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란의 추억... 윈난 소수민족의 설움 간직한 고성

입력
2022.07.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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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윈난 민족 ⑧바이족(白族)과 다리(大理)

윈난성 다리고성의 남문인 문헌루. 다리는 소수민족이 백성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대리국의 수도였다. ⓒ최종명

당나라 출신으로 포로로 잡힌 후 재상을 역임한 정회의 손자 정매사가 반란을 일으켰다. 윈난을 통치하던 민족연합 남조국(南詔國)이 멸망했다. 35년이 지난 937년에 후진의 절도사 단사평이 나라를 세웠다. 대리국(大理國)이다. 지배층과 달리 백성은 터줏대감인 바이족(白族)을 비롯해 조상 대대로 살아온 민족이었다. 지금의 다리(大理)에 수도를 정했다. 원나라를 세운 쿠빌라이가 군대를 이끌고 침략할 때까지 300여 년 동안 평화롭게 살았다.

다리 창산으로 오르는 케이블카. 창산 정상은 한여름에도 눈으로 덮여 있다. ⓒ최종명

다리 서쪽에 위치한 창산(蒼山)에 대리석이 풍부하다. 건축자재나 석조에 사용되는 돌이다. 품질이 우수한 돌이 많아 나라 이름이 대명사가 됐다. 창산은 19개의 봉우리가 줄줄이 이어진다. 최고봉인 마룡봉이 해발 4,122m다. 여름에도 정상에는 잔설이 남는다. 봉우리 사이 계곡을 흐르는 물살이 힘차다. 동문에서 케이블카를 탄다. 설산을 바라보며 능선 하나를 넘는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발아래 나무가 꽤 흔들린다. 10여분을 비행한 케이블카는 2,523m 지점에 멈춘다.

다리 창산의 운유로 등산로. ⓒ최종명

능선에 등산로가 있다. 18㎞에 이르며 이름도 멋진 운유로(雲遊路)다. 계곡으로 들어갔다가 빠져나오고 낭떠러지 따라 하염없이 걷는 길이다. 오르내리지 않고 줄곧 평탄하다. 2007년에 갔을 때 가랑비가 내리고 운무가 휘감겨 절벽이 어딘지도 몰랐다. 구름을 걷는 기분이었다. 계곡을 돌 때마다 빗물만큼 폭포수가 쏟아졌다. 대리암을 뚫고 가는 등산로는 끝도 없었다.

끝자락에 리프트가 있다. 날씨 좋을 때 걷고 싶어 2013년에 다시 도전했다. 하늘과 구름이 본연의 색깔을 드러냈다. 조금 공포스러운 절벽만 애써 무시하면 트레킹 코스로 손색없다.

다리 창산 케이블카에서 본 이해(洱海). ⓒ최종명

창산에서 바라보면 멀리 이해(洱海)가 보인다. 고대에는 엽유수(葉榆水)나 이하(洱河)였다. 호수 생김새가 귀처럼 생겼다는 이름이다. 귀에 물을 집어넣더니 언제부터인가 바다가 됐다. 남북으로 42.5㎞, 동서로 6.3㎞로 길쭉한 귀가 연상된다. 창산과 이해 사이에 고성이 있다. 호수 주변은 바이족이 살아온 터전으로 민가가 빼곡하다. 호수 남쪽을 샤관(下關)이라 부르고 행정기관과 기차역이 있다. 북쪽에는 상관(上關) 마을이 있다. 호수 위아래가 고성으로 가는 관문이었던 셈이다.

다리고성... 소수민족의 나라, 민란의 추억

다리 천룡팔부 촬영세트장 입구에서 황제의 손님 맞이 행사가 열리고 있다. ⓒ최종명

무협소설의 대가 김용 작가의 ‘천룡팔부(天龍八部)’에 단예라는 인물이 나온다. 대리국의 황실 혈통이다. 11세기 북송과 거란족의 요나라가 치열하게 영토 전쟁을 벌이던 시대다. 거란족 출신으로 밝혀진 개방 방주 교봉, 소림사 승려 허죽과 의형제를 맺는다. 3명의 주인공이 이야기를 풀어간다.

창산에서 고성으로 가는 길에 천룡팔부 촬영세트장이 있다. 드라마 제작을 마친 후 관광지로 개방하고 있다. 성문 앞에서 황제가 손님을 맞는 행사가 열린다. 군사와 신하가 도열하고 황제와 황후도 몸소 출연한다.

천룡팔부 촬영세트장 거리. ⓒ최종명


천룡팔부 촬영세트장에서 열리는 단씨 집안 혼례 풍습 재연. ⓒ최종명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사자춤과 그림자극이 인기다. 죄인을 체포하는 상황극도 재미있다. 거리 곳곳에서 서커스가 열린다. 차림표를 잘 살피면 흥미진진하게 구경할 수 있다. 혼례 풍습이 관광객의 이목을 끈다. 단씨 집안 어른이 행사를 주관한다. 아가씨가 2층에서 수구(繡球)를 들고 나온다. 농구공 크기로 수를 놓아 만들었다. 몇 번 던질 듯 말 듯하면 웃음바다가 된다. 수구를 잡은 총각이 즉석에서 신랑이 된다.

신랑과 신부가 나란히 2층에서 어른의 농담과 훈계를 듣고 혼례를 치른다. 키 크고 날쌔면 고관대작의 사위가 될 수 있다. 혼례가 끝나면 2층에서 무수히 많은 사탕이 뿌려진다. 모두에게 돌아갈 만큼 날아다니고 바닥에 깔린다. ‘희탕(喜糖) 언제 먹느냐’는 말이 곧 결혼을 뜻한다. ‘국수 언제 먹느냐’와 같은 표현이다.

고성 남문으로 간다. 아치형 문과 성벽 위 누각이 화려하다. 2층에 문헌명방(文獻名邦) 편액이 있어 문헌루라 부른다. 청나라 강희제 시대 운남제독으로 파견된 편도가 썼다. 문헌으로 유명한 나라라는 칭찬이다.

문헌은 ‘논어’에서 군신의 예와 충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팔일(八佾) 편에 나온다. 공자는 문헌이 부족한 나라가 있어 예가 무엇인지 알아먹지 못한다고 했다. 주희는 ‘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 문은 서적이며 헌(獻)은 현(賢)이라 했다. 사료가 풍부하다는 뜻만 아니다. 학자도 많다는 메시지니 ‘문헌’에는 뜻밖의 깨달음이 숨어 있다. 오랜 역사를 지녔다고 모두 문명국가가 아니니 말이다.

다리고성의 두문수사부 표지. ⓒ최종명

남문으로 들어가니 두문수사부(杜文秀師府)가 나타난다. 청나라 제독이 근무한 관청이었다. 후이족(回族)인 두문수는 울분이 치밀었다. 가족이 청나라 군인에 의해 살해당하고 약혼녀는 잡혀갔다. 수도로 상경해 항소했으나 무용지물이었다. 후이족과 한족이 은광 문제로 쟁투가 벌어진 틈을 이용해 청나라 총독이 후이족 주민을 학살했다. 이에 항의하다 투옥됐다. 마침 윈난 일대에서 발생한 봉기 덕분에 감옥 문이 열렸다. 출옥 후 1856년 민란의 깃발을 들었다.

다리고성 두문수사부 바깥의 인민영웅기념비 광장. ⓒ최종명

탐관오리를 축출하고 재해로부터 주민을 보호한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민족 구분 없이 일치단결을 호소했다. 다리를 공격해 청나라 군대를 몰아냈다. 16년 동안 다리는 해방구였다.

청나라의 대신 잠육영이 지휘하는 토벌군이 몰려왔다. 결사 항전했으나 식량과 총탄이 고갈되자 형세가 불리해졌다. 두문수는 청나라 군영으로 찾아가 주민 살육을 멈추길 요구하며 항복했다. 1872년 12월 26일 두문수는 살해됐다. 다리 일대 후이족은 매년 망인절(亡人節)을 열어 추모한다. 안에서 바깥을 보니 총을 든 인민해방군 조각상이 보인다. 중국 어디나 인민해방군기념비가 있다. 민란 흔적 앞이라 그런지 착잡한 기분이다.

다리고성에서 본 창산. ⓒ최종명


이해로 이어지는 다리고성의 거리 풍경. ⓒ최종명

인민로(人民路) 사거리가 가장 번화하다. 맥도널드와 중국은행도 있다. 서쪽으로 바라보니 창산이다. 주민이 살고 관광객이 붐비는 고성이다. 눈앞에 설산이 펼쳐지니 색다른 감흥이 일어난다. 언제나처럼 설렌다. 동쪽은 이해 방향이다. 다른 고성에 비해 한산한 편이다. 골목 따라 걸으면 공예품이나 차 파는 가게가 많다. 카페나 찻집, 식당도 흔하다. 이해 방향으로 가다가 고성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 표지판을 발견한다.

다리고성의 천주당 건물. ⓒ최종명

신민로(新民路)로 100m 정도 들어간다. 다시 골목으로 가면 예상치 못한 건축물이 등장한다. 처마가 이중으로 펼쳐졌고 꼭대기에 십자가가 반짝거린다. 천주당(天主堂)이다. 처마 아래에 사자, 코끼리, 용, 봉황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벽과 들보, 두공에도 화려하고 다채로운 문양을 채웠다. 1930년에 건축됐다. 바이족의 사당과 같은 양식이며 내부는 서양식 종교 시설로 꾸몄다.

다리고성의 천주당 내부. ⓒ최종명

본당 안에 ‘하느님은 사랑(天主是愛)’이라 적혀 있다. 아편전쟁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티베트와 윈난을 나눠 침탈하기로 야합했다. 총칼로 무자비하게 주민을 살해했다. 중원이 변경 오랑캐라 멸시하던 지방이다. 더 악랄한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속수무책이었다.

현대 중국도 역사의 교훈이 될만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교사의 미소가 동행했다. 유난히 프랑스 선교사가 윈난에 많았다. 청나라 말기에 각성한 주민들이 천주당 파괴 운동을 전개했다. 야만 국가에 맞선 항거였다. 살아남은 천주당이 많지 않다. 청나라가 멸망한 후 건설된 천주당이 고성에 숨어 있다.

화려한 조명 뒤에 피비린내 나는 역사

바이족 전통 식당인 매자정주가. ⓒ최종명


바이족 전통 식당인 매자정주가. ⓒ최종명

바이족 전통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단골 식당을 찾는다. 고성의 중심인 인민로에 위치해 찾기 쉽다. 전통 가옥을 개조한 매자정주가(梅子井酒家)다. 술 항아리가 잔뜩 쌓였고 싱싱한 채소가 진열돼 있다. 맑은 물이 솟아나는 우물이 하나 있다. 20명 정도 함께 식사할 방도 있다. 마당도 넓어 식탁이 마련돼 있다. 바이족 혼례 만찬인 토팔완(土八碗) 요리로 유명하다. 인생에 결혼만 있을까. 8가지만이 아니라 훨씬 많은 가짓수가 있다. 잘 고르면 피로연보다 멋지게 잔치를 벌일 수 있다. 직접 증류한 술을 저렴하게 제공하니 술판으로 쉽게 이어진다.

다리고성의 오화루. ⓒ최종명

만찬을 즐기고 나오니 어느새 고성은 야경으로 탈바꿈했다. 3층 누각 오화루(五華樓)가 번쩍거린다. 귀빈을 접대하던 장소로 남조국이 처음 건축했다. 천년이 훨씬 넘는 역사다. 중건을 반복했고 지금 모습은 명나라 초기 형태다. 문화혁명의 광풍으로 파괴됐다 1998년에 복원했다.

조명 뒤에 감춘 피비린내가 풍긴다. 902년 정매사의 반란으로 남조국이 멸망할 당시 왕족 800여 명이 살육 당한 현장이다. 1254년 쿠빌라이가 대리국을 침공해 군대가 오화루에 주둔했다. 몽골군도 황실을 끝까지 추적해 씨를 말렸다. 유난히 시뻘건 불빛 여운이 누각을 휘감고 있다. 역사의 그늘이 불씨로 타올라 핏빛으로 살아나는 까닭이다.

달고 쓴 인생의 맛, 바이족의 차 마시기

다리 시저우고진의 저택 엄가대원이 물항아리에 비친 모습. ⓒ최종명


시저우고진의 저택 엄가대원. ⓒ최종명

고성에서 이해를 따라 북쪽으로 30분을 이동한다. 상관 부근 시저우고진(喜洲古鎮)에 바이족 마방의 저택인 엄가대원(嚴家大院)을 찾는다. 20세기 초에 건축된 삼방일조벽(三坊一照壁) 저택이다. 말 그대로 하나의 조벽과 세 방향의 주거 공간이다. 3,000㎡가 넘는 면적에 4채의 가옥으로 이뤄져 있다.

청나라 조정으로부터 5품 벼슬을 받아 대부제(大夫第)와 사마제(司馬第) 간판이 있다. 마당의 물 항아리에 비친 건물이 햇살을 받아 산뜻하다. 복도와 문을 지나 그냥 슬쩍 둘러보는데도 1시간이나 걸린다. 산수청음(山水清音)과 만나니 주인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진다. ‘자연은 소리가 거의 없다’는 말을 걸기가 쉽지 않다.

시저우고진 엄가대원 내부. ⓒ최종명

엄자진(嚴子珍)은 차를 유통해 부를 형성한 인물이다. 다리 일대에서 상호인 영창상(永昌祥)을 모르는 이가 없다고 했다. 수십만 톤의 차를 생산했다. 병차(餠茶) 형태인 푸얼차를 사발처럼 압축시킨 타차(沱茶)로 만들어 성공했다. 운반에 유리해 이익도 상당했다. 송학(松鶴)이란 브랜드를 만들었다. 직원이 3,000명이 넘었으니 그야말로 제국이었다. 탁월한 기업가 마인드를 지녔다. 직원 교육의 필요성을 알고 외국인 선생을 영입해 영어 교육을 시킨 선각자였다. 천고일인(千古一人) 편액이 명성을 대변하고 있다. 엄자진과 아들 다섯 명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모두 상재가 뛰어났다.

시저우고진의 대저택 엄가대원 ⓒ최종명

일제가 대륙을 침공하자 쇠락의 길을 걸었다. 아름다운 저택을 고스란히 남겨둔 채 모두 해외로 떠났다. 저택 안에 찻집이 있다. 차를 마시며 차상(茶商)의 희로애락을 듣는다. 바이족 풍습인 삼도차(三道茶)를 배운다. 차를 3번 나눠 마신다.

찻잎을 찻주전자(茶壺)에 넣고 약한 불로 데운 후 따로 끓인 물을 붓는다. 첫 번째 맛은 쓴 편이라 고차(苦茶)다. 음미한 후 찻물에 생강, 꿀, 참깨, 호두를 넣는다. 두 번째 맛은 달아 첨차(甜茶)라 한다. 마지막은 회미차(回味茶)다. 꿀과 산초를 넣는다. 단맛과 매운맛이 섞여 맛이 복잡하다. 돌이켜 음미하게 된다. 인생의 맛을 나누는 일이다. 바이족이 손님을 맞아 차를 마시는 방법이다.

시저우고진의 별미인 바바를 굽는 모습. ⓒ최종명

골목에서 향긋한 냄새가 난다. 밀가루 빵인 바바(粑粑), 시저우고진의 별미다. 고기와 파를 넣고 산초도 조금 들어간다. 도시의 단맛에 길들여졌기에 별로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저 담백한 맛이다. 바바는 숯불에 굽는 빵이다. 고르게 익히려고 숯불 담은 철판이 두 개다. 위와 아래에서 고루 불을 지핀다. 밀가루 반죽이 점점 노릿하게 구워지는 바바를 보는 재미가 있다. 활활 숯이 타는 자그마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즉석에서 만든 바바를 후후 불며 먹는 맛이 제법이다.

다리의 자연과 전설 '나비의 꿈' 공연

다리의 솽랑 거리. ⓒ최종명


다리의 솽랑 거리 카페 뒤로 이해와 구름 덮인 창산이 보인다. ⓒ최종명


다리 솽랑의 남조풍정도와 유람선. ⓒ최종명

다리에 갈 때마다 늘 호수 건너편이 궁금했다. 이해 동북쪽에 위치한 솽랑(雙廊)으로 간다. 어촌은 어느새 객잔과 식당이 즐비한 관광지로 변모했다. 물과 가까울수록 숙박 예약은 어렵고 비싸다. 물결 찰랑거리는 숙소를 찾으면 기분 좋은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고성에 비해 여유로운 동네라 호수를 따라 어슬렁거리기 좋다. 호반 카페에 앉으면 구름에 가린 창산이 그리 멀지 않다고 손짓한다. 호수의 섬 하나를 남조풍정도(南詔風情島)라 이름 짓고 유람선이 자주 오간다.

다리 샤관의 공연장에서 열리는 '나비의 꿈' 공연. ⓒ최종명


다리 샤관의 공연장에서 열리는 '나비의 꿈' 공연.. ⓒ최종명

솽랑에서 호반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1시간을 달리면 샤관이다. 바이족 역사와 문화를 담은 호접지몽(蝴蝶之夢) 공연장이 있다. ‘나비의 꿈’ 공연이 열린다. 명나라 여행가 서하객이 다리에 왔다. 멋진 묘사를 남겼다. ‘샘에 나무가 자라는데 봄이면 생기발랄한 나비 같은 꽃이 만개한다’고 기록했다. 바이족은 매년 음력 4월 보름에 나비 축제를 연다. 나비의 꿈은 바이족의 상징이 됐다. 나비를 주제로 다리의 자연경관을 담았다. 꽃과 나비는 연인이다. 춤을 추며 하늘에서 내려온 나비가 아리따운 아가씨에게 다가간다. 연인은 하늘로 날아오를 듯 서커스를 선보인다.

다리 샤관의 공연장에서 열리는 '나비의 꿈' 공연. ⓒ최종명


다리 샤관의 ‘나비의 꿈’ 공연. ⓒ최종명

풍광과 전설을 한 묶음으로 표현한다. 창산과 이해가 등장한다. 삼방일조벽을 배경으로 춤을 추고 노래도 한다. 붉은 조명과 함께 설산이 나타난다. 별이 빛나는 밤의 달빛이라 공감한다. 무희의 춤은 불 타는 밤과 어울린다. 전통 악기와 민속 복장으로 무장한 배우들의 연기에 점점 깊이 빠져든다. 다리를 터전으로 살아온 바이족의 꿈을 잘 표현한 무대다. 창산과 고성, 이해와 차마고도 마방을 두루 만끽한 발품 기행을 모아놓은 공연이다. '구름의 남쪽' 땅에 여전히 살아있다는 바이족의 호흡을 듣는 듯하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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