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리면'의 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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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리면'의 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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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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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 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발 거친 언사가 22일 오전 한 방송사의 현장영상 공개로 국내에 알려진 지 15시간이 지난 그날 밤, 대통령실이 내놓은 해명은 기자에게 흥미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대통령이 두 차례 비속어를 쓴 점은 인정하나 우리 국회를 염두에 둔 '날리면'이란 표현이 '바이든'으로 왜곡됐다는 것인데, "다시 한번 들어봐달라"는 김은혜 홍보수석의 대국민 읍소를 따랐더니 대통령 발언이 오전과는 사뭇 다르게 들리는 것이었다. 이후 SNS상에선 대통령실 해명을 두둔하는 이들과 '국민 청력을 시험하느냐'고 비판하는 이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 우리가 '들리는 대로 듣는 게 아니다'라는 사실은 이젠 과학적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신경과학 분야의 최신 연구 성과에 바탕한 교양서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리사 펠드먼 배럿 지음)을 참고하자면, 우리 뇌는 청각, 시각, 후각, 촉각 등 감각 정보를 해독할 때 '기억'을 십분 활용한다. 바로바로 들어오는 모호한 정보에 의존해 상황을 파악하려다간 제때 적절한 반응을 하기 어려운 만큼, 기존 입력 정보를 동원해 어떤 상황인지를 '예측'한다는 것이다. 이때 감각 정보는 뇌가 미리 상정한 가설을 확인하는 데 쓰인 뒤 버려진다.

□ 이처럼 뇌는 감각 정보가 도달하기도 전에 주변 변화를 실시간 감지한다. 책은 직관적 이해를 돕고자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시는 일을 예로 든다. 물을 마시면 곧바로 갈증이 줄어드는 게 보통의 경험이지만, 사실 물이 혈류에 도달하려면 20분 정도가 걸린다. 몸에 수분이 보충되기도 전에 갈증을 해소해주는 건 뇌의 상황 예측 작용이란 것이다. 저자 배럿은 일상적 경험이란 궁극적으로 뇌가 주의 깊게 만들어낸 '환각'이라고 말한다.

□ 대통령이 실제 뭐라고 했는지는 본인만이 알 일이지만, '바이든'과 '날리면'으로 갈린 저 시비에 청력 이상의 요소가 개입됐다는 점은 과학이 입증하는 바다. 우리는 믿고 싶은 바에 사로잡혀 같은 소리도 다르게 듣는 어쩔 수 없는 존재일까. 이에 배럿은 "오늘의 행동은 내일 뇌가 내놓을 예측"이라며 "당신에겐 새로운 방향으로 예측하는 뇌를 길러낼 자유가 있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훈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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