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알바·대출...고단한 청년들에 멈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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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알바·대출...고단한 청년들에 멈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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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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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눈감지 마라' 49편 짧은 연작 소설
지방대 졸업한 두 청년의 알바 인생 좇아
서로를 껴안기도 힘든 소외 계층들 그려
애잔함 그 후… 주변의 비극을 직시할 용기

이달 16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 취업박람회에 구직자들이 채용 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방소멸. 너무 과격한 표현 아닌가 생각했던 그 단어가 어느새 익숙하다. 정부는 올해부터 아예 지방소멸 대응기금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여기서 지방대와 청년은 빠질 수 없는 키워드다. 지방 청년 인구를 늘리는 게 관건이다. 현실은 착잡하기만 하다. 지방대 졸업생은 취업시장에서 언제나 열세고, 그래서 지방대는 학생 정원 채우기도 어렵다. 지방 청년들의 길은 어딜까.

이기호 작가의 신작 '눈감지 마라'는 이런 현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쓴 49편의 짧은 소설(엽편 소설)을 엮은 연작 소설이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지방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살고 있는 본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감수성의 원천"도 거기에 있다고 말한다. "애당초 보편적인 '지방'과 '청년'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각기 다른 지방과 각기 다른 청년만 있을 뿐이다. 이야기는 늘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눈감지 마라'는 지방에서 갓 대학을 졸업한 청년 '전진만'과 '박정용'의 삶을 따라간다. "그냥 조용히 대학만 다녔을 뿐인데도" 1,000만 원 안팎의 빚이 생겼지만 취업은 되지 않았다. 대학 시절 내내 룸메이트였던 둘은 광역시 외곽에 보증금 없는 월세 30만 원짜리 방에서 같이 살며 알바(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한다. 출장뷔페, 택배, 생활폐기물센터, 편의점 등 알바 종류도 다양하다.

작가가 핍진하게 써내려 간 두 청년의 삶을 읽다 보면, 실소가 나는 대목에서도 마음 한편이 애잔하다. 명절 연휴에 고속도로휴게소 판매 알바를 하던 '정용'은 우연히 만난 옛 연인에게 오징어를 "반숙으로 구워달라"는 말을 듣는다. 5년 만의 첫 마디이자 마지막 말이다. 남의 속도 모르고 시급 높은 이 알바를 또 하자는 친구 '진만'에게 "너나 해"라고 괜한 성질을 내는 대목에선 쓴웃음이 난다. 코로나19 감염을 걱정하는 이유가 건강이 아니라 자가격리할 공간이 없는 원룸 신세 탓이라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이기호 작가. 마음산책 제공

이기호 작가의 유쾌함은 여전하지만 가볍지 않다. 두 주인공을 통해 시선이 다른 취약계층으로 확장되면서 주제의 깊이감이 생긴다. 매일 같이 사기당하는 아버지의 뒤치다꺼리를 평생 한 '진만'의 아버지는 치매 증상을 보이는 노부를 모시고 산다. 아들에게 한 푼 보태주기는커녕 경비원으로 일하며 두 식구 입에 풀칠도 빠듯한 삶이다. '진만'과 함께 일한 '최종민'은 지방 전문대 학적부에 이름은 올렸지만 알바생을 주업으로 삼고 있다. 산업재해로 허리를 다친 후 병치레 끝에 돌아가신 아버지, 식당 설거지 등으로 생계를 꾸리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다른 선택지는 없다.

작가는 이들이 서로를 포용할 여유가 없는 냉혈한 현실을 계속해서 이야기에 각인한다. 이는 두 청년의 이야기가 어떤 공포 소설보다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다. '정용'이 일하는 편의점 인근에 노부부가 붕어빵 장사를 시작한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편의점 점주는 물론이고 장사가 영 안 되던 인근 옛날 통닭집 사장 부부도 손님 뺏는 노부부가 못마땅하다. 결국 다른 곳으로 가서 장사하라는 말까지 꺼낸 통닭집 사장에게 노부부는 "우리도 이게 먹고 살아보겠다고 시작한 일"이라며 미안하다는 말만 연거푸 한다. 이 짧은 소설의 제목처럼 '모두 견디는 사람들'일 뿐이다.

눈감지 마라·이기호 지음·마음산책 발행·320쪽·1만5,000원

우리 안의 모순을 직격하는 반전들도 무게감을 더한다. '정용'은 매일 밤 10시 15분 편의점 컵밥을 먹는 초등학생에게서 졸업식에 가족 대리로 와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고민 끝에 따라 나선 그는 연민의 마음에 짜장면이라도 먹자고 제안하지만 거절당한다. 아이는 10만 원이 든 봉투를 주며 "아빠가 많이 넣지는 못 했대요"라는 말을 전한다. 아이 부모님 모두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그는 "수치심과는 또 다른 어떤 무섬증"을 느낀다. 어려운 형편일거라 지레짐작하고 베푸는 마음에 내심 흐뭇했던 순간들에 얼굴이 달아오를 '정용'이 그려지는 장면이다.

종이에 물이 번지듯 하던 비극은 소설 후반부에 감당하기 어렵게 터져 나온다. 주인공들은 뭐라도 해 보겠다는 의지로 한 발을 내딛을수록 더 가라앉기만 한다.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그 늪을 만든 건 옆에 있지만 옆에 있지 않은 타인, 우리다. 소설 제목과 동일한 짧은 소설('눈감지 마라')에서 '정용'은 여고생을 불법 촬영한 것으로 의심되는 한 남자 손님에게 사진을 지우라고 요구한다. 밤새 고민하다 용기를 낸 것. 작가는 마흔아홉 편의 이야기 끝에 결국 '눈감지 않는 용기'를 말하고 싶었던 것일 테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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