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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관객은 늙어도 음악의 사색은 늙지 않는다

입력
2022.10.17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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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고령임에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왼쪽부터), 다니엘 바렌보임과 26세의 나이로 파리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 마스트미디어·롯데문화재단 제공

고령임에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왼쪽부터), 다니엘 바렌보임과 26세의 나이로 파리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 마스트미디어·롯데문화재단 제공

서양음악사엔 수많은 신동이 있었다. 모차르트, 코른골트도 유명하지만 문호 괴테는 멘델스존에 대해 "모차르트보다 훨씬 더 뛰어난 신동"이라며 극찬했다. 작곡가는 물론 연주자를 소개할 때에도 신동이라는 표현을 쓴다. 특히 새로운 연주자를 소개할 때 이들의 재능 발현 시기가 얼마나 빨랐는지를 강조하며 신동 혹은 최연소라는 단어로 탁월함을 부각시킨다.

어려서부터 보이는 특별한 재능은 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이를 돈벌이에 활용하려는 이들의 접근도 많았다. 관심과 환호에 익숙해진 신동들은 자신의 자리가 새로운 인물로 대체될 때마다 위기감과 지독한 불안을 겪으며 살았다. 모차르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도 새로움, 빠름, 젊음이라는 단어는 필요할 때마다 적극 활용되며 사람들을 자극한다. 이 때문에 새로운 인물의 등장으로 이전의 스타는 기회를 잃기도 하고 좌절과 추락을 겪기도 한다. 반면 세간의 관심에서 벗어난 시간을 자기 편으로 만들고 진가를 천천히 오래도록 드러내는 인물들도 있다.

존경받는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의 최근 출간 에세이 '한 번 더 피아노 앞으로'에서 '나이든 피아니스트', '우리의 늙어가는 멋진 관객들'이라는 짤막한 글이 흥미로웠다.

대체로 성악가의 목소리는 뒤늦게 성숙해지지만 빠르게 쇠약해지고 관악기 연주자는 나이 들면 호흡이 가빠지고 입술의 힘을 잃는다. 현악기 연주자는 신동으로 출발했을지라도 세월이 지나면 활이 흔들리고 음정이 불안해진다. 하지만 허프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슈라 체르카스키 등을 예로 들며 "콘서트 피아니스트라는 직업은 인간 역사상 노인에게 가장 적합한 직업 중 하나"라고 말한다.

실제 전 세계 무대에서 가장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는 피아니스트는 마르타 아르헤리치, 루돌프 부흐빈더, 안드라스 쉬프, 마리아 조앙 피레스 등 60~70대 피아니스트들이다. 메나헴 프레슬러는 90세가 된 2014년에 베를린 필하모닉과 처음 협연했고 94세에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첫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그들에게는 10~20대 피아니스트들이 선사하는 감동과는 다른 지점의 매력, 감탄, 감격이 있다.

역대 지휘자들의 수명은 연주자들보다 훨씬 길었다.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95세 지휘자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는 지난주 도쿄에서 말러를 지휘했고, 다음 달엔 80세가 된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를 이끌고 내한한다. 공연은 취소됐지만 86세의 지휘자 주빈 메타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을 이끌고 내한할 예정이었다. 역시 이달 내한 예정이었다가 취소된 파리 오케스트라의 26세 수장 클라우스 메켈레의 등장도 놀랍고 신선한 매력을 선사하지만 60대 이상 지휘자들은 인생이 얼마나 길고 다면적 에너지를 갖고 있는지, 시간의 축적이 만들어낸 멋과 위용과 품위가 뭔지 묵직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연주자 입장에서 마주하는 관객은 어떻게 보일까. 음악 관계자들은 젊은 연주자를 무대에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젊은 관객 유입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관객, 클래식을 듣지 않았던 관객 유입을 위해 다양하고 신선한 기획이 세계 곳곳에서 등장한다. 그런데 객석의 노령화를 개탄하는 이들의 의견을 듣던 허프는 ‘우리의 늙어가는 멋진 관객들’이라는 글에서 "이것은 마치 늙어가는 관객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수십 년간 무대 위에서 살아온 그에게 객석은 늘 "흰머리의 바다"였지만, "새로운 흰머리가 오래된 흰머리를 대체"하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은 없다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은 세대를 넘나들기 때문에 아이돌 콘서트만큼 젊은 연령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건 아니겠지만 극장에 관객 유입은 꾸준하다는 것이다. 또한 나이가 들면 지혜와 참을성, 예리함, 사색이 따라오는데, 이것은 위대하고 복합적인 음악, 시간이 감춰둔 오래된 것의 가치를 즐기는 데 꼭 필요한 자질이라는 것이다. "더 젊고 힙한 관객을 끌어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노인 관객을 참아주는 것처럼 노인들이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빠르고, 젊고, 새로운 것도 좋지만, 지나치게 함몰되고 절대시하는 시선을 거두기를. 오래되어 더 좋은 것들은 세대를 초월하고 만인 공통이며 영원히 늙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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