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1.2%

입력
2023.01.25 00:00
26면
0 0

법원의 이혼소송 판결은 사회적 메시지
가정을 유지하고 돌보는 가치의 중요성
법이 사회적 흐름과 동떨어질 수는 없어

노소영(왼쪽사진) 아트센터 나비 관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연합뉴스

1.2%.

지난해 12월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1심에서 34년간 자녀 셋을 함께 키우고 가족을 돌본 노 관장의 재산 형성 기여분에 관해 법원이 내린 평가이다. 수년을 끌어온 법정 다툼 끝에 불륜으로 유책사유가 있는 최태원 회장의 1심 완승으로 끝났다. 30년 넘게 두 사람의 우주가 얽혔는데 대재벌에게 적정하다고 산정된 위자료뿐 아니라 재산 형성에 내조한 부인의 기여가 1.2%라니.

이혼이란 지극히 사적인 일이고 이혼마다 사정은 모두 다르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건마다 특수하다는 생각이 이혼 판결이 갖는 사회적 파장을 가려서는 안 된다. 이혼에 관한 법률이나 판례들이 변화하면 이혼율이나 이혼의 양상에 궁극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회계장부를 정리하는 일처럼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번 소송의 끝은 강력한 전례로 남아 앞으로의 유사한 소송에서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 그러한 결과들이 축적돼 결혼과 가정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구성하는 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부부가 함께 가꾸어 온 삶을 어떤 시각에서 볼 것이며 그 가치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의 표준을 구성할 것이다.

그동안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징하게 질긴 가부장제의 그림자는 남녀 모두의 삶을 여전히 짓누르고 있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2023년 1인 가구 추계치는 약 734만 가구로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미 전체 가구의 약 33.6%가 1인 가구이다. 저출산 대책을 세운다고 난리들이지만 저결혼이 있기에 저출산이 있다.

가사노동을 포함해 가정을 돌보는 일은 몸으로 시간으로 해야 하는 것뿐 아니라 심리적인 노동을 포함한다. 이전 세대에 비해 많은 변화가 있지만 여전히 맞벌이 기혼 여성과 남성이 가사노동에 쓰는 시간을 비교해볼 때 여성은 하루 평균 187분, 남성은 54분으로 여전히 여성이 3.5배 정도 더 많다(2019년 기준). 직업을 가진 기혼여성은 파트타임 일자리를 무조건 하나씩 기본으로 달고 사는 셈이다. 자녀가 생기면 부부 중 한 사람은 경력에 타협을 하는 경우가 많다. 파트타임이나 유연근무가 가능한 선택지로 바꾸는 것도 대개는 아내 쪽이다. 맞벌이 부부는 다른 노동자를 고용해 가사노동을 맡기기도 하지 않는가 하는 반문을 하는 사람은 집안일에 손 하나 까딱 해본 일이 없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번 판결이 가정을 돌보고 가꾸는 일의 가치에 대해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내었는가 생각해보자. 후하게 쳐주어도 그냥 후려친 셈이다. 가정이라는 것은 하나도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모두의 삶을 가로지르는 일상을 구성한다. 이 흔해 빠진 일상은 누군가가 챙기고 관리해야 굴러가고 남녀노소 빈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상이 삐걱대면 삶은 곧 망가진다. 가정은 모든 삶의 인프라인 것이다.

재산분할로 인한 경영권 변동이 판결의 고려사항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유책사유를 제공한 최태원 회장 개인이 풀어야 할 문제다. 설마 극소수 지분으로 기업집단을 호령하는 전근대적 재벌시스템을 지켜야 국민경제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식의 낡은 프레임이 동원된 것일까 의심스럽다. 그 많던 여성단체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성명서나 논평이 눈에 띄지 않는다. 가정에 대한 헌신이 이렇게 무자비하게 몰가치화된 마당에 해당자는 부자니까 여성단체가 나설 일이 아니라는 것일까.

평생 워킹맘으로 살아온 필자가 늘 바랐던 것은 나도 남성 동료들처럼 아내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위안스러운 것은 주변에 적지 않은 남성들이 이번 판결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이번 판결과 같이 큰 퇴보가 가로막지만 않는다면.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