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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가해기업 사과, 최소한의 예의다

입력
2023.03.13 17: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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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
장인철수석논설위원

文정부가 방치한 한일 강제동원 대립
尹정부 국내 반발 감수하며 극복 시도
미래협력 바라면 일본도 성의 보여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해 11월 12일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참가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프놈펜=뉴시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해 11월 12일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참가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프놈펜=뉴시스

예상한 대로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실질 배상을 일본 측에 구하는 대신, 우리나라가 자체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에 반발 여론이 만만찮게 일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국민 공감을 얻기 힘든 ‘자체 해법’을 서둘러 확정한 배경엔 최악의 한일관계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다고 본다. 지금 미중 갈등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본격적인 글로벌 진영 대립으로 격화하면서 신(新)냉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나토(NATO)의 동북아 확장, 미ㆍ일ㆍ인도ㆍ호주 등이 손잡고 한국 베트남 뉴질랜드까지 아우르려는 ‘쿼드 플러스’ 체제 가동 등은 과거 냉전 때 못지않은 안보ㆍ경제블록의 형성을 예고하면서 우리의 선택을 재촉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일 대립을 방치하면 자칫 안보는 물론, 지속적 번영을 위한 외교적 선택의 여지를 스스로 봉쇄하는 치명적 결과를 부를 수 있다. 또 하나, 2018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피고기업의 한국 내 자산 강제매각이 추진돼도 실효적 배상 실현보다는 양국 간 소모적 대립만 연장ㆍ증폭될 것이라는 현실적 판단도 작용했다고 본다. 외교부와 대통령실의 ‘속도 조절’ 건의에도 윤 대통령이 조기 해결을 밀어붙인 배경일 것이다.

하지만 한일 과거사에 얽힌 국민감정은 닥쳐오는 해일조차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피가 끓는’ 사안이라는 게 문제다. 실제로 한국갤럽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59%가 정부 해법에 대해 ‘일본의 사과와 배상이 없어 반대한다’고 답해 ‘찬성’ 35%를 압도했다.

반대여론뿐만 아니다. 안 그래도 현 정권과 전면전 상태인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즉각 국회를 박차고 거리로 나가 ‘장외투쟁’에 들어갔다. 지난 주말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대일 굴욕외교 규탄 범국민대회’에서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정권의 치욕적인 강제동원 배상안은 경술국치에 버금가는 계묘년 ‘계묘국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국제정세 현실이 긴박하다 한들, 일렁이는 국민감정을 어쩌겠는가. 그러니 정부는 기왕 발걸음을 뗀 만큼, “지지율이 10%까지 떨어져도 한일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각오대로, 차제에 우리나라가 격동하는 세계체제의 흐름을 타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한일관계의 실질 개선을 이루도록 꿋꿋이 나아가는 게 맞다. 그러려면 야당에 대해서도 “문재인 정권은 뭐 했냐”는 식으로 탓만 할 게 아니다. 국회를 통해 몇 번이고 상황을 설명하고 최대한 야당의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2018년 대법원 판결 후, 상황을 방치한 문재인 정권의 무능과 무책임도 한일관계 파탄에 큰 책임이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비판과 견제를 하되, ‘죽창가’만 되뇌는 수준을 넘어 대외적으로는 일본에도 호응을 촉구하는 대승적 협력과 협치의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정부의 파격적 ‘화해조치’가 안착하려면 일본의 호응 또한 절실하다. 일본은 과거 우리 왕비를 살해하고 끝내 나라까지 빼앗은 무도한 나라다. 그런 나라의 총리가 되레 “국가 간 신의가 지켜지지 않으니 교제할 수 없다”는 무례를 또 범했음에도, 윤석열 정부는 묻어두고 선선히 손을 내민 셈이다. 이제 일본 정부도 화해를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면, 짓밟힌 인권과 손 내민 한국 정부의 선의에, 또 인류 보편가치를 지지해온 일본의 양심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보이는 용기를 내야 한다.

돈 같은 건 안 내도 된다. 이번 한일정상회담에 맞춰 가해기업의 사과만이라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서기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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