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국적, 엄마, 혈통 다 가짜...워싱턴 활보한 러시아 스파이의 10년 사기극

알림

국적, 엄마, 혈통 다 가짜...워싱턴 활보한 러시아 스파이의 10년 사기극

입력
2023.03.31 04:30
수정
2023.03.31 13:41
0 0

브라질 유학생으로 위장해 10년간 첩보 활동
'푸틴 기소' 국제형사재판소 입사 직전 체포

미 연방수사국은(FBI)은 러시아 스파이 세르게이 체르카소프가 2017년 모스크바 공항의 한 식당에서 자신의 친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과 대화하는 영상을 입수했다. 해당 영상 캡처

미 연방수사국은(FBI)은 러시아 스파이 세르게이 체르카소프가 2017년 모스크바 공항의 한 식당에서 자신의 친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과 대화하는 영상을 입수했다. 해당 영상 캡처

'이름 빅터 뮬러 페레이라. 국적 브라질. 혈통 아일랜드계.'

미국 워싱턴에서 10년간 활동하다 지난해 체포된 러시아 스파이 세르게이 체르카소프의 가짜 신분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30일(현지시간) 체르카소프의 '영화 같은' 10년을 추적해 보도했다.

"목표는 미국 대학원 진학"... 8년을 준비한 스파이

스파이 세르게이 체르카소프의 러시아 여권. 체르카소프는 브라질 출신으로 국적을 위조했다. 미 연방수사국(FBI) 제공

스파이 세르게이 체르카소프의 러시아 여권. 체르카소프는 브라질 출신으로 국적을 위조했다. 미 연방수사국(FBI) 제공

체르카소프 투입 작전은 2009년 브라질에서 시작됐다. 러시아 군사정보국(GRU)은 관계자를 뇌물로 매수해 ‘빅터 뮬러 페레이라’의 가짜 출생증명서를 발급받았다. 페레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출생증명서에 그의 어머니라고 명기된 건 1993년 자녀 없이 사망한 브라질 여성이었다.

25세였던 체르카소프는 페레이라 명의로 운전면허증, 여권 등을 만들어 여행사에 취업한 뒤 세금을 꼬박꼬박 내며 조용히 살았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해당 여행사를 GRU 요원 소유로 추정한다.

체르카소프는 완벽한 연기를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세뇌했다. 노트북에서는 포르투갈어(브라질 공용어)로 그의 가짜 어린 시절을 묘사한 4쪽짜리 문서가 발견됐다. "아일랜드계 브라질인. 이국적인 외모와 억양 때문에 외국인이라 놀림받았고 친구가 없었음. 어릴 때 살던 리우데자네이루 다리 근처는 생선 냄새가 심해 싫었음···." FBI 진술서에 따르면, 그는 이 문서를 10년 동안 보관하며 수없이 읽고 외웠다.

미국 정치·안보·경제 정보가 모여드는 워싱턴으로 가기 위한 체르카소프의 작전은 치밀했다. 아일랜드 명문 공립대학인 트리니티칼리지에서 학사 학위부터 땄다. 이후 워싱턴에 있는 대학원 두 곳에 지원했고, 2018년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에 합격했다.

대학원생의 '이중생활'...ICC 입사 앞두고 체포

대학원 재학 당시 체르카소프가 오토바이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대학원 재학 당시 체르카소프가 오토바이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스파이로 변신한 체르카소프는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고 대담하게 활동했다. 브라질 출신 명문 대학원생이라는 안전한 신분과 네트워킹 덕분이었다. 워싱턴에서 수시로 열리는 각종 싱크탱크 토론회 등에 참석해 인맥을 쌓았고, 이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GRU에 넘겼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측근인 한 싱크탱크 고문으로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을 취재하는 식이었다.

체르카소프는 의심받지 않았다. 러시아 출신인 유진 핀켈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억양은 이상했지만 아일랜드계 브라질인이라는 설명에 다들 납득했고, 러시아인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며 “똑똑하고 유능했던 청년"이라고 말했다.

가짜 인생은 지난해 4월 체포되며 막을 내렸다. 네덜란드의 국제형사재판소(ICC) 분석관으로 취직하기 직전이었다. ICC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한 기관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러시아 대사관이 중요 인물의 도착을 준비하고 있다"는 동향을 포착했고, 미 중앙정보국(CIA)과 FBI와 공조 끝에 그를 스파이로 지목했다.

브라질로 추방된 체르카소프는 출생증명서와 여권 등 위조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아 상파울루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이달 24일 미국에서도 불법첩보행위·비자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러시아는 체르카소프가 스파이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처벌을 피해 해외로 도피한 헤로인 밀매업자”라고 주장하며 브라질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고, 그는 러시아행을 요구했다. WP는 "체르카소프가 진짜 헤로인 밀매업자라면 러시아에서 징역 15년 이상의 중형에 처해지게 된다"며 "그가 스파이라는 방증"이라고 전했다.

이유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