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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자, '피의 숙청' 악명 높은 러시아 구치소 구금돼… 서방과 협상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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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자, '피의 숙청' 악명 높은 러시아 구치소 구금돼… 서방과 협상 카드?

입력
2023.04.01 14:51
수정
2023.04.0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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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혐의로 체포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솔제니친 갇혔던 악명 높은 레포르토보 구치소 수감
전문가 "러 정보당국, 스파이 줄줄이 잡히자 압박 받았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소치=AP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소치=AP 뉴시스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가 스탈린 시절 '피의 숙청' 본거지로 악명 높던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수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서방에서 잇따라 러시아 스파이가 붙잡히자 미국을 상대할 협상 수단으로 미국인 기자를 체포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인 기자가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것은 냉전 종식 이후 처음이다.

미국 기자 수감된 레포르토보 구치소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정보기관 연방보안국(FSB)에 체포된 WSJ 기자 에반 게르시코비치(32)는 레포르토보 구치소에 갇혀 있다.

1900년대부터 정치적 탄압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이곳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기점으로 옛 소련 비밀경찰 산하의 수용시설로 탈바꿈했다. 특히 1930년대 들어 이오시프 스탈린이 반대파 축출을 목적으로 실행한 '대숙청'에 따라 '인민의 적'으로 지목된 이들을 임시 구금하며 고문하는 장소로 쓰였다. 스탈린 사후에는 간첩 혐의자와 정치범을 가두는 국가보안위원회(KGB)의 구금 시설로 악명을 이어갔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 '수용소 군도' 등을 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1974년 이곳을 거쳤고, 러시아 초대 대통령 보리스 옐친 집권 당시 반체제 인사들도 이곳에서 수감 생활을 했다.

구치소의 정확한 규모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러시아 현지 매체에 따르면 최대 200명의 수감자를 주로 독방에 가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간첩 또는 반역 혐의를 받는 용의자를 변호해온 예브게니 스미르노프에 따르면 레포르토보는 수감자를 완전한 정보 격리 상태에 가두는 것으로 악명 높다. 스미르노프는 "전화, 방문, 신문 등 모두 금지된다"며 "편지를 보내더라도 한두 달씩 지연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AP에 말했다. 그는 "FSB 수사는 일반적으로 1년에서 1년 6개월가량 이어지는데, 간첩·반역 혐의로 무죄 방면된 경우는 1999년 이후 없었다"고도 주장했다.

WSJ에 따르면 게르시코비치는 지난달 29일 오후 4시 연락을 마지막으로 소식이 끊겼다. 회사가 고용한 변호사도 접견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다. 체포되기 전부터 게르시코비치는 러시아 보안요원들의 미행과 휴대전화 감청을 인지했고, 누군가 자신을 촬영하고 있는 것도 감지했다고 WSJ은 전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모스크바 지국 소속 에반 게르시코비치(32) 특파원. AP 연합뉴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모스크바 지국 소속 에반 게르시코비치(32) 특파원. AP 연합뉴스


"궁지 몰린 러 정보기관, 뭔가 하고 있다는 것 보여주려고"

미 NBC방송은 "게르시코비치 체포는 최근 러시아 스파이들이 서방에서 줄줄이 붙잡히면서 러시아 정보당국이 궁지에 몰린 상황과 관련됐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16일 폴란드 정부는 철도와 공항에서 파괴 공작을 준비해온 혐의를 받는 러시아 간첩단을 일망타진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네덜란드 정보기관은 가짜 신분을 이용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잠입하려 한 러시아 스파이를 붙잡았는데, 이 스파이는 지난 13년간 미국에서 정계 동향을 수집해 왔다는 사실도 최근 드러났다.

근래 유럽에서 이례적으로 많은 러시아 스파이가 체포된 데는 미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의 도움이 있었다고 NBC는 미 정보당국 고위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러시아 정보당국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여 있다고 본다. 전직 CIA 고위 관리 출신 존 사이퍼는 "①러시아 정보기관은 압박을 느끼는 상황이고,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②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방이 러시아를 약화하려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메시지를 강화하거나, ③해외에서 체포된 러시아인들의 석방을 포함해 서방의 양보를 얻어낼 협상 카드를 찾으려 시도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사이퍼는 "이런 결정을 주도하는 것은 종종 러시아 내부의 정치적 역학 관계"라며 "외국 기자를 체포하고 스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도처에 적들이 있다는 서사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냉전 시절에도 미국 언론인이 수감된 경우가 있었다. 미 US뉴스월드리포트 모스크바 특파원 니콜라스 다닐로프는 1986년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가 20일 만에 미국에 구금된 소련 간첩 혐의자와 맞교환됐다.

한편 WSJ은 냉전 막바지부터 러시아를 취재해온 베테랑 특파원인 모스크바 지국장도 게르시코비치 기자의 체포 이후 철수시켰다고 밝혔다. WSJ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치하의 러시아는 취재하기엔 지나치게 위험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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