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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1위 "괜찮아 안 죽어"?...남성에겐 자기돌봄이 필요해

입력
2023.10.07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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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자기돌봄하는 남성 되기

게티이미지뱅크

유달리 기분 좋은 날이 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고 이야기는 즐거우며 음식도 더할 나위 없을 때, 흥을 돋우는 술이 빠질 수가 없다. 한 잔씩 술이 들어갈수록 취기와 분위기는 달아오르고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게 아닌 술이 술을 마시는 지경에 이른다. 임사체험 같은 블랙아웃 이후 ‘역시 나의 종착지는 지옥이구나’ 싶은 숙취가 몰려온다. ‘내 다시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으리’, 하는 아침의 다짐은 저녁 해와 함께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뜨끈한 국물은 또다시 해장술을 부른다. 그다지 술을 좋아하거나 자주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꼭 한 번씩 이런 실수를 한다. 게다가 주변에는 이런 망각의 동물이 잔뜩이라, 그들과 술자리 흑역사만 모아도 조선왕조실록 한 권이 뚝딱이다. 한번은 술자리에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왜 이런 자기학대를 반복하는가?” 가만히 서 있는 전봇대와 힘겨루기를 하고, 구애인에게 전화를 걸고, 기어이 먹었던 음식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 이 과정, ‘자기학대’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다. 이야기의 시작은 폭음이었지만 폭음만 문제가 아니다. 그 외에도 흡연과 폭식, 과로, 스트레스 등 각자 저마다 자기학대 노하우가 적지 않다. 결국 우리는 종합병원 신세가 된 서로를 위로하며 몸에 좋다는 영양제 정보를 교환했고 과음 끝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술자리를 파했다.

더 자주, 더 많이 술을 마시는 남성들

흥미롭게도 이런 모임은 남성이 절반 이상이거나 오직 남성들로만 구성될 때가 많다. 이것이 나의 편협한 인간관계에 따른 오류인가 싶어 주변 여성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이토록 자기 파괴적인 폭음을 즐기는 여성 모임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런 경향은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더 명확하게 나타난다. 2021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남성의 68.3% 한 달에 1회 이상 음주했다고 응답했고 여성은 46.6%가 같은 응답을 했다. 폭음으로 물어보면 격차는 더 커진다. 최근 1년 동안 월 1회 이상 술자리에서 폭음(남자의 경우 7잔, 여자의 경우 5잔)을 물어봤을 때, 남성은 47%, 여성은 24.1%로 남성이 두 배가량 많았다. 그러니까, 꼭 남성들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성들은 유난히 자주, 더 많이 술을 마셨다.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구씨(손석구·왼쪽사진)는 술을 끊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지난해 6월 드라마에서 구씨 집으로 나온 경기 연천군의 주택에 소주병과 술잔이 놓여 있다. SLL 제공·최주연 기자

사실 술뿐만이 아니다. 남성의 자기 파괴적 경향은 다른 수치들에서도 그 심각성이 드러난다. 이를테면 남성의 흡연율은 31.3%로 여성(6.9%)보다 4배 이상 높고 비만율남성이 46.3%, 여성이 26.9%다. 게다가 더 많은 남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통계청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2021년 남성 자살자수는 총 9,193명으로 여성 4,159명의 두 배에 달했다. 그러니까 더 많은 남성들이 신체적, 정신적으로도 건강하지 않으며 자신의 건강을 챙기지 않고 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이것은 놀랍게도 전 세계적으로 마찬가지다.

남자들의 유언 1위, “괜찮아, 안 죽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남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유언’이라는 농담이 있다. 남자들의 유언 1순위가 “괜찮아, 안 죽어”고 2순위는 “설마 죽기야 하겠냐?”라는, 수많은 남성들이 ‘객기’를 부리며 위험을 무릅쓰다가 죽거나 다치는 현실을 반영한 뼈아픈 농담이다. 이런 일들이 그저 호르몬 때문일까? 그 안에는 남성들의 서열문화와 마초적 남성성에 대한 선망 같은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소가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개중에는 돌봄에 미숙한 남성 문화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돌봄은 여성의 몫으로 이야기되어 왔다. 여성이 신체적으로, 역사적으로 더 돌봄에 특출 나고 적합하기 때문에 남성이 임금노동을 하고 여성이 돌봄노동을 하는 성별에 따른 분업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효율적이기까지 하다고 주장해왔다. 우리의 어떤 차이를 본질적이고 절대적인 특성으로 환원하고 역할에까지 차별을 두는 행태의 문제는 이미 차고 넘치게 지적해왔다. 아니, 애초에 하나도 ‘자연’스럽지 않은 몰골로 그런 주장을 한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고 설득력도 떨어진다. 나아가 이제는 알아야 한다. 돌봄에 역할을 나누는 그런 식의 주장이 우리 모두의 삶을 각박하게 만든다. 특히 지금까지 여성의 돌봄에 무임승차해 왔던 이들에게 미뤄둔 청구서가 날아오고 있다.

남성들에게 유난히 낯설고 어색한 자기돌봄

배우 류수영이 2020년 KBS에서 방송된 '신상출시 편스토랑'에서 음식 솜씨를 뽐내고 있다. KBS 제공

흔히 돌봄 하면 아이 또는 노인돌봄을 떠올리지만, 스스로를 돌보는 ‘자기돌봄’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 자기개발(계발)은 익숙했을지언정 자기돌봄에는 낯설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자기돌봄(Self-care)을 “건강을 유지, 증진하고 질병을 예방하며 장애에 대처할 수 있는 개인, 가족 및 지역사회의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WHO는 자기돌봄을 보건의료의 가장 기본적 단계이자 모든 단계에서 실시되는 주요한 건강 행위로 바라본다.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 스스로의 건강을 충분히 잘 챙기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앞서 음주문화, 흡연율 등으로 살펴보았듯, 남성들은 이 자기돌봄 역시 미숙하다. 그것은 남성들의 더 짧은 수명, 더 잦은 병치레와 직결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나타나는 각종 사고와 폭력, 범죄, 의료비용 증가와 같은 사회문제로도 이어진다. 단적으로 미국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남성의 조기 사망 및 질병으로 인해 미국 경제에 매년 약 4,790억 달러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하니 이를 그저 개인의 문제만으로 치부할 수 없다.

자기돌봄이 다소 복잡해 보여도 하나씩 뜯어놓고 보면 결국 우리 삶을 이루는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이를테면 신체돌봄이 있다. 건강하고 균형 있는 식사와 운동 같은 주기적인 신체활동,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몸에 해로운 술, 담배, 약물을 멀리하는 게 이에 포함된다. 정신건강을 챙기는 마음돌봄 역시 중요하다. 특히 우리사회에서 많은 남성들은 감정 표현에 인색하고 본인의 어려움을 주변에 털어놓지 못한다. 자신을 좀먹는 왜곡된 남성성을 벗어던지고 희로애락을 잘 표현하며 주변에 고민을 털어놓거나 심리상담, 정신과 진료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 마음돌봄에 큰 도움이 된다. 자신이 생활하는 주변환경을 청결하게 가꾸고 스스로에게 필요한 음식을 잘 대접하는 가사돌봄 역시 자기돌봄의 일환이다. 최근 사회복지관에는 노년 남성을 위해 밥솥 사용법, 세탁기 돌리는 법 등 가사노동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생기고 있다. 특히 노년세대 남성의 경우 가사노동을 등한시하던 문화로 인해 여성 배우자가 병들거나 먼저 사망하는 경우 스스로를 돌보지 못해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는 경우가 많아지며 생겨난 변화다. 이외에도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기에 주변 관계를 돌보는 일부터 지속가능한 자연을 위해 생태환경을 돌보는 일까지 자기돌봄은 개인에 국한되지 않고 더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뻗어나갈 수 있다.

우리 같이 자기돌봄할 수 있을까?

‘자기’돌봄이라는 명칭으로 인해 오해 사기 쉽지만, 자기돌봄은 그저 셀프가 아니다. 영국에서는 2018년부터 ‘외로움 부서(Ministry of Loneliness)’를 설립하여 개인의 외로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적인 전략을 세웠다. 사회 구성원의 감정과 경험을 그저 개인의 몫으로 치부해버리지 않는 사회는 얼마나 든든하고 성숙한가. 이러한 흐름 속에 성별 고정관념으로 인해 자기돌봄에 취약해진 남성의 변화를 위한 프로그램도 늘어나고 있다. WHO 유럽은 2018년, 남성 건강 전략을 채택하여, 남성의 자기돌봄을 비롯한 육아, 가족, 가사 돌봄 등에 변화를 만들고자 했다. 캐나다에는 HeadsUpGuys(headsupguys.org)라는 남성 대상 우울증 관리 웹사이트도 있다. 남성성으로 인해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지 못하는 남성들을 위함이다. 국내에도 서울1인가구포털을 살펴보면 각종 자기돌봄 프로그램이 기획, 운영되고 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에서 기획, 진행한 교육 프로그램 '신-남성 연애스쿨' 5차시에서도 돌봄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남성들이 타인(특히 여성)에게 돌봄을 위탁하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스스로의 자기돌봄을 점검하고 필요한 정보를 나누는 유익하고 알찬 시간이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가? 몸 어딘가가 불편하거나 마음 한구석에 털어놓지 못한 고민이 있지는 않은가? 그저 술 한잔으로 털어버리거나 어쩔 수 없다며, 원래 인생은 그런 거라며 자주 넘겨버리지는 않았는가? 그저 개인적이거나 너무 당연하게만 여겼던 당신의 고민이 페미니즘을 만나 우리의 고민이 될 수 있다. 세간의 오해와 달리 페미니즘은 남성의 건강에 이롭기까지 하다. 남성의 생명연장의 꿈, 멀리 있지 않다. 우리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남성들에게 자기돌봄이 필요하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인 이한 작가와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이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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