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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학교도 안 받아줘요"... 설리번 선생님 못 만나는 한국의 헬렌 켈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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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학교도 안 받아줘요"... 설리번 선생님 못 만나는 한국의 헬렌 켈러들

입력
2023.12.02 04:30
수정
2023.12.03 12:0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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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장애인의 날: 시청각장애인 실태]
시각·청각 동시장애... 전문화된 특수교육 필요
전담할 학교는 없고, 전국에 센터 세 곳이 전부
교육 받으러 매주 제주와 서울 오가는 아이도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에서 한 시청각장애 아동이 촉감놀이치료를 받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당장 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특수학교들조차 아이를 받아주지 않아요. 어떡하죠?"

시청각장애인 자립생활센터 '손잡다'에 올해 2월 도움 요청이 들어왔다. 경북 구미시에서 일곱 살짜리 시청각장애인 아동을 키우는 엄마는 "시각, 청각, 발달장애 특수학교 세 곳에 입학을 문의했지만, 시각·청각장애를 동시에 지닌 아이를 받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하소연했다.

그러나 센터 측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는 아예 없는 데다, 이들을 도울 센터도 전국에 세 곳뿐이다. 센터 측은 복지관과 농아인협회의 시청각장애인 모임을 권했지만, 성인 위주 모임이었고 전문 교육을 받을 수도 없는 곳이었다. 엄마는 결국 마땅한 교육기관 찾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시청각장애인 위한 학교 전무

시청각장애인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장애를 함께 가진 이들이다. 전문적인 도움이 없다면 '적막 속의 어둠'을 온전히 홀로 걸어가야 한다. 19세기(1880년) 미국에서 태어난 헬렌 켈러(시각·청각·언어장애)에겐 앤 설리번이라는 훌륭한 선생님이 있었지만, 21세기 한국의 '헬렌 켈러들'은 설리번 같은 선생님도, 자신들을 돌봐줄 학교조차 찾지 못하는 처지다. 그래서 이들을 챙기는 것은 오로지 가족 몫이다.

유엔이 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12월 3일). 한국의 시청각장애인 1만172명(보건복지부 집계)이 마주한 현실이다.

시청각장애 아동을 다룬 2021년 개봉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 포스터. 파인스토리 제공

시청각장애인의 수가 적지 않지만, 이들에게 교육기관을 찾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다. 손을 통한 의사소통법이나 촉각치료(촉감을 통해 시청각장애 아동의 인지능력을 향상시키는 활동) 등이 필수적이지만, 현실은 학령기 시청각장애 아동이 다닐 마땅한 기관이 없다.

그래서 시청각장애 아동 진모(10)양은 도움의 손길을 찾기 위해 매주 서울에서 제주를 오간다. 월요일에 제주 집을 나서 서울의 대안학교에 갔다가, 금요일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식이다. 등교까지는 총 5시간이 걸리고 교통·숙박·교육비 등에 매달 200만 원이 들지만 '배우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제주의 특수학교를 다녔던 진양은 학교 생활 2년 내내 고립감을 느꼈다. 청각장애반이 없어 지체장애반에 들어갔는데 아이를 가르칠 만큼 수어를 할 수 있는 선생님도, 수어가 가능한 반 친구도 없었다. 어머니 김모(39)씨는 "지금껏 어린이집, 유치원을 수차례 옮겨 다녔는데, 이젠 의무교육을 받는 당연한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시청각장애인들에겐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장애 정도나 발생 시기에 따라 점자, 수어, 촉수화 등 맞춤형 학습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촉각치료 등을 진행하는 밀알복지센터 헬렌켈러센터의 홍유미 센터장은 "치료 시기를 놓쳐 성인이 되고 발달장애를 갖게 돼 소통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며 "어릴 때부터 적절한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센터장은 "전문 교육기관이 없다 보니 많은 아이들이 일반학교나 특수학교를 가서 넋 놓고 시간만 보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달 21일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의 홍유미 센터장이 시청각장애 아동 교육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현정 기자


법이 정한 장애 유형에 시청각장애는 없어

2019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돼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지원 인력과 전담기관 설치가 명문화됐지만, 현재 이를 전담하는 교육기관은 없다.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곳은 헬렌켈러센터, 제주도농아복지관, 실로암시청각장애인학습센터 세 곳뿐인데, 이마저도 실로암의 경우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이 따로 없다. 헬렌켈러센터에서 20명, 제주농아인복지관은 4명의 아동만이 일주일에 한두 번, 약 50분씩 촉각치료나 의사소통 학습을 할 뿐이다.

전문교사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2021년 교육부가 시청각장애 학생이 재학 중인 특수학교, 특수지원센터 23곳을 조사한 결과, 시청각장애 학생을 맡은 교사 절반 이상이 △의사소통 △학습매체 △보조공학 △보행 등 주요 평가를 실시하지 않았다. 시각·청각장애 관련 교과용 도서를 활용하지 않는다는 답변도 64%를 차지했다. 교사가 학생과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비율도 68%에 달했다.

홍 센터장은 "법이 규정한 15개의 장애 유형에 시청각장애가 없다"며 "그래서 제대로 된 현황 조사나 제도 마련도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정의와 서비스를 반드시 마련하게끔 하는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회에는 김예지,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의 시청각장애인 권리보장 법안이 각각 발의돼 있다.

시청각장애인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전문 인력과 표준화된 교육을 갖춘 지원센터를 전국에 확충하기 위해 예산을 확보하는 등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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