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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신지 마”… 외교부, 느닷없는 '복장 주의령'[문지방]

입력
2024.01.28 13:00
수정
2024.01.28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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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조태열(가운데) 외교부 장관이 12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장관 취임식에서 김홍균(오른쪽) 1차관, 강인선 2차관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보고를 앞둔 한 직원이 부랴부랴 뛰어갑니다. 깜빡한 게 있나 싶지만 손에는 결재서류가 이미 쥐어져 있습니다. 사무실 책상 밑으로 몸을 던진 그는 실내화를 벗어던지고 구두로 갈아 신습니다. 옷맵시를 확인한 직원은 상부에 보고를 하러 다시 올라갑니다.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외교부에서는 최근 들어 이런 일이 낯설지 않다고 합니다. 외부 행사도 아닌데 왜 이 직원은 이처럼 허둥댄 것일까요.

사정은 이렇습니다. '드레스코드(복장 규정)' 따지기로 유명한 외교부 고위 간부가 정장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출근한 직원에게 격식에 맞게 구두를 신으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간부는 평소에도 직원들의 복장을 깐깐하게 검사하기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만큼 본인도 철두철미한 자기관리와 패션 센스로 유명합니다.

'멋쟁이 신사' 외교관, 기준 낮아졌지만 여전히 엄격한 드레스코드


'공무원계의 멋쟁이 신사.'

'XX 없는 엘리트 그룹.'


다른 부처 직원들이 외교관을 지칭할 때 자주 접하는 표현입니다. 서로 정반대 의미입니다. 하지만 두 표현에는 '품위'를 강조하고 '옷차림'이 남다르다는 취지가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죠. 그만큼 외교관은 일반 공무원과는 '뭔가 다른' 영역에 속해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각국을 상대로 글로벌 무대에서 우리 정부와 국민을 대표하는 국가대표선수라는 인식 때문이죠.

그래서 과거에는 장관 지시로 외교관과 해외주재관, 정부 대표, 사절 및 배우자가 착용할 예복 양식을 따진 규정까지 있었습니다. 짙은 정장바지에 흰색 양말을 신고 출근하면 '예의가 없다'며 핀잔받기 일쑤죠. 소매에 커프스 버튼을 달지 않았다고 한마디 들은 외교부 직원들도 많았습니다. 여성 외교관의 경우, 정장바지가 아닌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지적도 받았다네요.

깐깐했던 외교관의 복장 기준도 시대가 바뀌면서 많이 완화됐다. '노타이'와 '카디건' 복장을 한 외교관들도 많아졌다. 원로 외교관들은 "세상 좋아졌다"면서도 적응을 못 하는 모습을 보였다. 외교부 유튜브 계정 캡처

물론 시대가 바뀌면서 변화는 있었습니다. 외교부 내 복장 내규는 사라졌고, 인사혁신처의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이 명시한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단정한 복장'을 지키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노타이' 복장의 외교부 직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디건을 걸치거나 일반 셔츠를 입은 외교관도 많습니다. 최근 운동화를 둘러싼 일침 아닌 일침은 어찌 보면 이러한 자율복장 문화가 '단정한 수준을 넘어선 자유로움'으로 가고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겠죠.

하지만 공식적인 외교 행사 복장도 아닌데,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조차 정장과 신발의 맞춤까지 신경 쓰는 건 지나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옵니다. 기준이 완화됐다고 하지만, 외교부의 복장 기준은 여전히 까다로우니까요. 실제 예비 외교관 교육과정에는 복장 예절 수업이 포함돼 있고, 수업을 듣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면바지를 입거나 색깔 있는 점퍼를 입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최근 공개된 외교관 후보자 정규교육과정 입교식 사진을 살펴봤습니다. 전체 인원 50여 명 중 무채색이 아닌 재킷을 입은 사람은 몇 명일까요? 정답은 1명입니다.

외교부가 복장에 민감한 건 격식과 품위를 중요시하는 외교관들의 세계에서 비롯됩니다. 과거에는 국제행사나 교류 현장에서는 반드시 예복을 입어야 했죠. 또한 대사로 임명받아 상대국가 정상을 만나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할 때는 자기 나라의 전통복장을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국 대사들은 격식 있는 행사에서는 한복이나 양복을, 조금 자유로운 분위기의 행사에서는 생활 한복 차림을 하는 경우가 많았죠. 이처럼 복장은 그 국가의 정체성이나 품위를 상징합니다.

외교가 패셔니스타, 격식보다 개성 강조할 때 많이 나와

이런 복장 문화를 두고 일각에서는 협상과 교류라는 외교의 본질보다 형식과 격식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런 외교가도 이른바 '패셔니스타'로 불리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들은 격식보다는 자기 만의 색채를 고민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박은하 전 영국대사가 대표적인데요. 옷을 입을 때마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살리는 방법을 고민해왔다고 하죠.

외교부 대변인실에서 근무하는 공보심의관과 사무관. 이들은 화장 안 한 '생얼'에 청바지를 입고 출근한 기자들과 만날 때에도 정장을 입고 있다. 외교부 유튜브 캡쳐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일찌감치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21세기 외교관들은 상대국 외교관에서부터 시골 농부까지 만날 수 있어야 한다며 격식을 벗어던지고 보통 사람들 속에 녹아들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조세영 전 외교부 1차관은 저서 '외교외전'을 통해 주예멘대사관 근무 시절 각국 정무팀 인사끼리 가진 친목모임에서 미국 외교관이 면바지를 입고 나타난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죠. 서로 정보를 주고받고 의견을 나누는 자리에 반드시 정장 차림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지난 2021년 영국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노타이' 차림을 한 것을 두고 국내에서는 의전사고라며 논란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G7 개최국이었던 영국은 문 당시 대통령의 옷차림을 두고 문제삼지 않았죠. 최근 국제회의 무대에서는 예복보다는 평복이나 비즈니스 캐주얼을 선호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운동화에 정장 차림은 아직 외교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복장 기준일까요? 밑창을 고무로 만든 운동화나 슬립온을 정장과 맞춰 입는 복장이 일상화된 요즘, '품위 있는 외교관'의 차림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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