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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 "암컷 우위는 자연법칙...여성시대를 기쁘게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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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 "암컷 우위는 자연법칙...여성시대를 기쁘게 맞이하자"

입력
2024.02.07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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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에는 남자가 화장을 한다' 20주년 판
"다윈 성선택 이론, '암컷의 우위'는 확실한 사실
수컷은 예뻐야 짝짓기로 후손을 남길 수 있어
'이대남' 담론은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얘기"

최재천 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다윈의 성선택 이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차은우 보세요. TV 보면 요즘은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들보다 더 예쁘고 선도 고와요. 이제 남자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자연계에선 짝을 얻어 새끼를 남기려면 수컷이 예뻐야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도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렇게 보면 지난 대선 때 '이대남' 어쩌고 한 건 그냥 자멸하겠다는, 안타까운 얘기예요. 여성은 남성 없이도 잘만 삽니다."


호주제 폐지로 이어진 그 책 '여성시대에는 남자가 화장을 한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만난 최재천(70)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여성시대에는 남자가 화장을 한다'(이음 발행)를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20주년 기념판이다. 2003년 최 교수는 찰스 다윈의 성선택 이론을 바탕으로 '여성의 우위'를 주장한 이 책을 냈다. 이어 헌법재판소에 가서 호주제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엉터리라는 의견을 발표했다.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이어 호주제는 곧 폐지됐다. 이 책은 한 시대를 증언하는 책이기도 하다. 책에는 본문 외에도 헌재 의견서 전문에다 최 교수를 비롯, 박한선(서울대 인류학), 이철희(서울대 경제학), 정희진(여성학)의 4인의 대담도 실었다.

2005년 국회에서 최종적으로 호주제 폐지가 확정되자 이를 지켜보던 여성단체회원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년 만인데 책 제목이 살짝 바뀌었다.

"그땐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였는데 지금은 '남자가'로 바뀌었다. 그때도 난 '남자가'를 제안했다. 출판사가 너무 부담스럽다 해서 토씨 하나 살짝 바꾼 걸 이번에 원래대로 되돌린 거다.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가 그만큼 바뀌었다는 뜻도 된다."

20주년 기념판 표지(왼쪽)와 2003년 출간 당시 표지. '남자도'에서 '남자가'로 제목이 바뀌었고, 다윈의 성선택 이론이 강조되어 있다.


-남녀 간 여러 비교 포인트가 있었을 건데 화장을 고른 이유는.

"그즈음 아모레퍼시픽의 서경배 회장과 친했다. 굉장히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 이야기를 자주 나눴고, 그러다 나도 화장품에 관심이 갔다. 정작 나는 뭐 하나 찍어 바른 적 없는 사람이지만 1990년대부터 '앞으론 남성 화장품 시대가 오니까 남성 화장품을 만들라'는 얘길 자주 했다. 한 번은 미국 LA타임스에서 취재 온 적도 있었다. 마침 세계 화장품 업계가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데, 한국의 생물학자가 그런 주장을 했다니까 궁금했던 모양이더라. 나중에 보니 내 얘긴 쏙 빠졌지만."


여성은 남성 없이도 잘 산다... 그게 자연의 법칙

-선견지명인 셈인데, 그건 성선택 이론 덕분인가.

"맞다. 성선택 이론에서 보자면 예쁘게 꾸미는 건 수컷의 일이다. 자연계에서는 수컷이 예쁘고 아름답고 아양 떤다. 안 예쁜 암컷이 예쁜 수컷 중 하나를 고르는 거다. 유독 호모 사피엔스만 그러지 않는 건 농경 때문이다. 근육의 힘으로 농사짓고 곳간을 지은 뒤 곳간 열쇠를 손에 쥐고 여성을 지배한 거다. 산업 고도화로 두뇌를 많이 쓰게 되면 이건 무너질 수밖에 없다. 헬렌 피셔 같은 유명한 인류학자는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제1의 성'이라 고쳐 부른 책을 내면서 여성의 경제력이 앞으로 더 막강해진다 했다. 나는 막강해질 것까지도 없다고 본다. 여성은 남성에 기대지 않아도 될 정도만 돼도 알아서 잘 산다. 필요하면 정자는 정자은행에서 사면 된다. 섹스는 여성은 남성에게 제안할 수 있지만, 남성은 여성에게 그럴 수 없다. 그러니 남성은 예뻐야만 한다. 그게 성선택 이론이다."

최재천 교수가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여성시대에는 남자가 화장을 한다' 20주년 기념판을 펼쳐 보이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그래서 이 책을 내고 뭇 남성들의 비난을 자초(?)한 건가.

"내가 진화생물학을, 동물행동학을 공부해 자연계의 보편성을 알았기에 쉽게 이해한 게 아닌가 싶다. 고미숙 박사가 알려준 얘긴데, 옛날 양명학 하던 사람들은 뭔가 깨달음을 얻으면 못 참고 온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 것과 비슷하다."


진화론과 달리 철저히 묵살당한 다윈의 성선택 이론

-다윈은 그 시절에 이미 '암컷의 우위'를 확신했나.

"그런 면에서 다윈은 정말 대단한 학자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19세기 백인 남성이었음에도, 자신의 관찰 결과에 따르면 자연계는 진화한다는 '종의 기원'을 1859년에 냈다. 성선택 이론을 담은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은 1871년 냈는데, 여기서도 자기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암컷이 우위에 있다고 결론 내렸다. 재밌는 건 '종의 기원'은 출간 즉시 엄청난 화제가 됐지만,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 대해선 모두 침묵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남성들이 그냥 덮어버린 것 같다. 다윈과 별도로 진화론을 연구했던 앨프리드 월리스도 진화론엔 동의했으나 성선택은 반대했다. 그 또한 그 시대의 사람이었던 셈이다."

다윈의 명저 '종의 기원' 번역본. 이보다 더 두꺼운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은 올해 발간 목표로 최재천 교수가 번역 작업 중이다. 사이언스북 제공


-대담에서 정희진 박사는 화장이 아니라 집안일을 하라 했다.

"당연하다. 화장은 상징적인 표현이다. '살아보니 아이를 직접 낳는 일 빼고 남편이 못할 일은 없다'고 강연 때마다 얘기한다. 개인적으로 미국 유학 시절 결혼했는데 요리, 청소, 설거지 열심히 했다. 내가 주변 유학생 부부들의 공적이었을 정도다. 부부싸움을 하면 '내가 이렇게 돕는데 뭐가 불만일까' 울컥하기도 했다. 아마 결혼 10년 차였을 때 같다. 그때 문득 '저 사람도 공부하러 온 한 개인이고 나 또한 그런 개인인데, 단지 결혼했다는 이유로 아내는 이 모든 걸 당연히 해야 하고 나는 그런 아내를 돕는 좋은 사람인 건가'라는 깨달음이 왔다. 그 뒤로 개인적으로 많이 변했다. 내 가정의 일이니 내가 하는 거다. 그뿐이다."


실속 없는 수컷의 삶... 이제 남성도 인생을 즐기자

-앞으로 남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유명한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은 침팬지 수컷들의 잔혹한 권력 다툼을 다룬 '침팬지 폴리틱스'라는 책을 냈다. 거기다 '겉으로 보기에 최고 우두머리는 수컷이지만 가장 좋은 자리에서 가장 좋은 음식을 먹고 가장 즐거운 삶을 사는 건 암컷'이라고 써놨다. 실속 없는 게 수컷의 삶이라는 거다. 대한민국 40, 50대 남성 가장들 얼마나 힘들게 사나. 죽어라 일만 하고, 옛날처럼 특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리는 것도 없는데 늘 기득권자라 욕먹고. 그러니 점점 더 확실해지는 여성시대를 쌍수 들고 환영하자. 이제 아내와 딸더러 나가서 돈 벌어오라 하고 남성도 인생을 즐기자."

조태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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