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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 고통 없애주려 만들었는데…프랑켄슈타인 됐다" 새마을금고법 '산파'의 후회

입력
2024.02.05 04:00
수정
2024.02.14 21:3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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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금융기관 민낯 : 새마을금고의 배신>
이종찬 광복회장 인터뷰… 새마을금고법 주역
"마을 금고, 춘궁기 때 쌀 빌려주는 역할 기대"
소액 쉽게 빌리도록 내무부에 감독권 줬는데…
재무부 차관 "언젠가 후회할 것" 경고가 현실로
행안부에 전담 부서 신설? "자리 늘리기" 비판
"금고 이사장, 전문가가 봉사하는 자리 돼야"

편집자주

새마을금고 계좌가 있으신가요? 국민 절반이 이용하는 대표 상호금융기관인 새마을금고가 창립 60여 년 만에 전례 없는 위기 앞에 섰습니다. 몸집은 커졌는데 내부 구조는 시대에 뒤처진 탓입니다. 내가 맡긴 돈은 괜찮은지 걱정도 커져갑니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새마을금고의 문제를 뿌리부터 추적해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광복회관 집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이종찬 광복회장이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광복회관 집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이종찬(87) 광복회장은 한국 현대사의 복판을 지켰던 인물이다. 국회의원을 네 번 지냈고 노태우 정부 때 정무1장관을, 김대중 정부 때는 국정원장을 역임했다. 산전수전 겪은 정치 원로가 지난 2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40년 전 판단을 후회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여당(민주정의당) 원내총무였던 1983년 새마을금고를 보호하는 법을 만들며 금고 감독권한을 내무부(현 행정안전부)에 쥐여줬다. 다른 금융기관은 모두 재무부(현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가 감독을 맡았던 것과 달랐다. 사정 급한 서민들에게 적은 돈을 쉽고 빨리 빌려주려는 취지였지만, 결과적으로 너무 순진한 판단이었다는 게 이 회장의 후회다.

이 회장은 한국일보의 '서민금융기관의 민낯, 새마을금고의 배신' 기획보도에 대해 “(전체적인 금융 시스템 속에서) 새마을금고 문제가 작아 보일지 모르지만, 그 작은 구멍이 둑을 무너뜨린다"며 “기사에 시의적절한 경고를 담았다"고 말했다.

'고액 대출 안 한다는 게 원칙이었는데… PF 대출까지 손대"

이 회장이 새마을금고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1982년이었다. "마을금고가 영세민에게 필요한 돈을 빌려주고 있는데 법적 뒷받침이 전혀 없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당시 시장 상인 등은 소액 급전이 필요해도 마땅히 빌릴 곳이 없어 고리채를 썼다가 이자의 늪에 빠져 절망하는 일이 흔했다. 서민들끼리 돈을 모아 만든 마을금고는 이들이 사채빚에 눌리는 일을 막아줬다. 이 회장은 "새마을금고법을 만들 때는 금고가 '환곡'(보릿고개 때 서민에게 쌀을 빌려줬다가 추수 때 돌려받는 것) 역할을 해줄 것으로 봤다"며 "법 제정 때 세웠던 대원칙은 '금고는 고액 거래는 하지 않고, 서민들끼리 돕게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내무부에 요청해 예금자보호준비금 20억 원을 마련하도록 하고 법에 이 제도를 명시했다. 금고에 돈을 맡기는 이들도 대부분 돈이 많지 않은 서민이었기에 안전망을 만들어준 것이다.

지역의 한 새마을금고 앞 모습이 담긴 과거 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역의 한 새마을금고 앞 모습이 담긴 과거 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법을 만들 때 가장 큰 쟁점은 누구에게 금고 감독을 맡기느냐는 점이었다. 이규성 당시 재무부 차관은 "돈 장사는 크든 작든 금융당국이 감독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반면 내무부는 "새마을금고를 은행처럼 깐깐하게 감독하면 서민들에게 적은 돈을 급히 빌려주기 어려울 것"이라고 맞섰다. 이 회장도 새마을금고를 금융사가 아닌 지역 공동체라고 봤기에 내무부 주장에 동의했고, 이 차관을 직접 설득했다. 당시 이 차관은 마지못해 따르면서도 "언젠가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지방 토호의 생리 몰랐다" 후회

이 차관의 경고는 현실이 됐다. 이 회장은 "새마을금고가 애초 법적 지원을 해준 의도와 달리 나쁜 방향으로 변해갔다"며 "이제는 마치 프랑켄슈타인처럼 사람을 잡아먹는 상황까지 됐다"고 비판했다. 법 제정 때는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처럼 성공한 마이크로 크레디트(무담보 소액 대출 기관) 사례를 떠올렸는데, 한국 지방 토호의 생리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특히 봉사하는 자리여야 할 새마을금고 이사장을 지역 유지 등이 전체 회원 중 극소수인 대의원 표를 받아 십수 년씩 장악하며 소액 대출 대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까지 손대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 회장은 "잘 아는 지역의 한 새마을금고가 PF 사업에 거액을 투자했다가 돈을 물려 다른 금고와 합병되는 일까지 봤다"며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나도 금고에 맡겼던 돈을 모두 뺐다"고 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광복회관 집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이종찬 광복회장이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광복회관 집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이 회장은 결자해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현재 맡은 일과 무관함에도 정권의 주요 인사들에게 새마을금고 문제를 이대로 놔둬선 안 된다고 직언한 것도 그만큼 절박함이 컸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자칫 큰 사고가 터질 수 있으니 새마을금고를 빨리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이미 금고 규모가 너무 커져 버렸기에 행안부가 아닌 금융당국이 이 문제를 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이 장관은 이 회장의 이야기를 듣고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다만 행안부가 만지작거리는 '개혁 카드'는 이 회장의 생각과 거리가 멀다. 행안부는 현재 직원 5, 6명이 맡는 마을금고 업무를 금융 전문 인력 등 13, 14명으로 구성된 신설 조직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이런 방안을 두고 "(행안부) 공무원들이 권한을 빼앗기기 싫으니까 부처 내 새 조직을 만드는 식으로 자기들 출세 자리만 늘리려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행안부 장관도 금고 감독은 행안부 능력을 벗어났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며 "공무원들이 자리 늘리는 안을 가져왔을 때 ‘그런 소리 하지 말고 (감독 권한을 금융당국에) 넘기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포용 금융에 새마을금고가 핵심 역할 해야"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이 회장은 '새마을금고를 제대로 개혁하려면 대통령실이 관심을 둬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금융 문제인 까닭에 윤 대통령도 쉽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회장은 새마을금고가 지금이라도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골목대장이나 전당포가 된 마을금고는 존재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현 정부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포용 금융’에서 새마을금고가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은행 지점장 출신 등 금융을 잘 아는 이들이 금고 이사장을 맡아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금고를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보받습니다> 지역 새마을금고와 중앙회에서 발생한 각종 부조리(부정·부실 대출 및 투자, 채용·인사 과정의 문제, 갑질, 횡령, 금고 자산의 사적 사용, 뒷돈 요구, 부정 선거 등)를 찾아 집중 보도할 예정입니다.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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