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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그만 태어나라"고? 동물단체가 '세계 중성화의 날' 만든 이유

매년 2월 마지막 주 화요일은 ‘세계 중성화의 날’(World Spay Day)이다. 1995년 미국 배우 도리스 데이가 창립한 동물보호단체인 ’도리스 데이 재단‘에서 유기동물을 줄이자는 취지로 제정됐다. 제정 당시에는 ’미국 중성화의 날‘이었지만, 2006년 도리스 데이 재단과 미국 휴메인소사이어티(Humane Society of the United States ㆍHSUS)가 합병하면서 ’세계 중성화의 날‘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제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이날에 맞춰 동물보호단체, 정부, 동물병원 등이 나서서 반려동물 중성화를 홍보하고 지원하는 이벤트가 열린다. 동물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중성화를 하는 게 오히려 동물학대라는 의견을 자주 접했다. 누군가는 중성화를 동물단체가 나서서 홍보하는 것 자체를 의아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배경을 안다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갈 것이다. 미국도 1960년대부터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기동물이 큰 사회적 문제였다. 1973년 HSUS가 동물보호소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그 해 미국에서 개, 고양이 약 1,350만 마리가 안락사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당시 미국 전체에서 사육하는 반려동물의 20%에 달하는 수치였다. ‘반려동물 개체 수 과잉’(Overpopulation)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미국은 유기동물 수를 줄이기 위해 법(Lesgislation), 교육(Education), 중성화(Sterilization)의 앞 글자를 딴 ‘LES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동물복지 법률을 강화하고, 반려동물 소유자 책임의식을 확산시키고, 원치 않는 동물들이 태어나는 것은 중성화로 방지하는 게 캠페인의 골자다. 동물 등록을 의무화하고, 중성화를 하지 않은 동물은 더 많은 등록비를 부과하도록 법을 제정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1971년 로스앤젤레스 시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중성화 클리닉을 열었고, 그 이후 미국 전체 지방자치단체와 동물보호소는 저비용 중성화 서비스 제공했다. 그 결과 20년간 동물 입소와 안락사율은 급감했고, 1990년부터는 꾸준한 감소세를 보였다. 보호소에 입소한 동물이 중성화 없이 지역사회로 되돌아가는 게 개체 수 과잉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통계로 확인되자, 캘리포니아 주는 1986년 시 보호소에서 입양하는 동물은 입양 전 보증금을 지불하도록 하고 중성화 이후 되돌려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12년 후인 1998년에는 모든 공영 및 민간 보호소에서 입양 전 중성화를 의무화하는 법안도 통과됐다. 그 결과, 캘리포니아 주 6개 시의 보호소에 유입된 동물 숫자는 2000년부터 2005년 사이에 10% 감소했다. 지금은 캘리포니아 주 외에도 30개 이상의 주에서 보호소 입양 동물에 대한 중성화를 의무화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를 비롯한 캘리포니아 주 15개 시는 개인이 키우는 개와 고양이에게 중성화 의무를 지우는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다만 수의학적 이유가 있거나 브리더 등 특별한 경우는 예외로 하고 있다. 반려동물 개체 수 과잉을 해소할 목적으로 중성화를 법제화하는 곳은 미국만이 아니다. 호주 수도 특별행정자치구역(Australian Capital Territory ㆍ ACT), 남호주(South AustraliaㆍSA), 서호주(Western AustraliaㆍWA) 등 3개 주는 반려견과 반려묘를 의무적으로 중성화해야 한다. ACT에서는 6개월 이상 반려견과 3개월 이상의 반려묘, SA에서는 6개월 이상의 반려견, WA에서는 2살 이상의 반려견과 6개월 이상의 반려묘가 의무 중성화 대상이다. 한국과 가까운 대만도 동물보호법으로 반려동물 중성화를 의무화하고 있다. 타이베이 시는 시에서 지정한 동물병원에서 중성화를 실시할 경우 수컷은 1,200대만달러(약 5만원), 암컷은 2,000대만달러(약 8만4,000원)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또한 영국, 싱가포르 등은 등록 비용에 차등을 두어 중성화하지 않은 동물은 매년 더 많은 등록비용을 지불하도록 해 불필요한 동물의 번식을 막고 있다. 그런데 ‘반려동물 천만 가구 시대’이고, 반려동물 복지를 외치는 지금, 한국 개들이 처한 상황은 어떨까? 2022년 기준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동물보호센터에 입소한 동물의 숫자는 총 11만3,400 마리다. 그런데 이 동물들이 모두 누군가 기르다 버린 ‘유기’동물일까? 동물자유연대의 ‘2022 유실·유기동물 발생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유기동물보호센터에 입소한 동물의 절반 이상이 1세가 되지 않았고, 10마리 중 8마리는 혼종견이다. 당장 정부가 운영하는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에 접속해 봐도 첫 장부터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혼종견들의 사진이 페이지를 가득 메우고 있다. 즉, 중성화되지 않고 실외에서 길러지는 개들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고, 태어난 강아지들은 길바닥을 배회하다가 신고하면 보호소로 입소하는 것이다. 이런 개들이 산으로 들어가 새끼를 낳으면 ‘들개’로 낙인찍혀 포획 대상이 되고, 유해조수로 사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외에서 길러지는 개만 문제도 아니다. 10년이 넘도록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동물을 데려오는 경로 중 가장 흔한 것은 ‘지인에게서 받아 오는’ 것이다. 2010년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조사에 의하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의 절반 이상(56.6%)이 ‘가족, 친지 등 아는 사람’으로부터 반려동물을 데리고 왔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10년이 넘은 지난 지금도 변한 것이 없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국민 5,000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 중 41.8%가 반려동물을 ‘지인에게서 무료로 입양했다’고 답했다. 도대체 어디서, 얼마나 많은 동물이 태어나고 있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개든 고양이든, 한 번에 여러 마리 태어난 동물을 개인이 모두 다 책임지고 기르기도 어려울뿐더러, 한 마리 한 마리 살뜰히 책임감 있는 양육자를 찾아주는 것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다. 쉽게 태어난 동물은 쉽게 길러지다 쉽게 버려질 가능성도 높다. 그렇지 않아도 보호소에서 입양하려는 수요가 낮은데, 몸집이 얼마나 자랄지도 모르는 혼종견에게 입양 기회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태어나서 몇 달 동안 좋은 경험이라고는 한 번도 하지 못하고 병에 걸려 죽거나 안락사되는 삶을 사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면, 이런 동물들은 태어나지 않게 하는 게 동물복지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살아 있는 생명을 돌보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 신고하면 이 강아지들을 현장에 나가서 구조하고, 보호 기간 동안 보호하고, 안락사하는데도 비용이 발생한다. 유기견이라면 그 비용은 모두 국가가 부담한다. 즉, 이 상황을 방치하면 세금을 밑빠진 독에 물 붓듯 투입해야 한다는 소리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국가가 반려동물 중성화에 두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개정을 거듭해 조문만 100조가 넘는 현행 동물보호법에서 ‘중성화’는 ‘맹견 사육허가조건’에 명시된 게 전부다. 동물보호센터운영지침은 ‘(동물) 분양 시 중성화에 동의하는 자에게 우선 분양하도록 하여야 하며, 중성화에 동의하지 않고 입양하는 자에 대해 중성화를 권고할 수 있다’고만 명시하고 있다. 즉, 동물보호센터에서 중성화를 ‘권유’할 수는 있지만, 필수 사항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나마 정부는 2021년부터 농촌지역 5개월령 이상의 실외에서 길러지는 개의 중성화 비용을 지원하는 마당개 중성화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읍면 지역의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고령자 소유 마당개 등을 우선적으로 지원한다. 전국 수준의 사업 효과는 가늠된 바가 없지만, 지역에 따라 어느 정도의 효과도 보고 있다. 제주도의 경우 사업 시행 후 보호소 입소 동물 숫자가 40% 이상 감소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해당 사업의 예산은 2023년 15억6,000만 원에서 2024년 13억4,000만 원으로 2억2,000만 원이 삭감됐다. ‘반려동물 개체 수 과잉‘은 인구 대비 동물 개체 수가 많다거나 동물의 숫자가 일정 숫자보다 많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반려동물을 잘 양육할 수 있는 수요보다 더 많은 숫자의 동물들이 태어난다는 의미다. 해마다 10만 마리가 넘는 동물들이 보호소로 들어오고, 이 중 절반이 입양 가정을 찾지 못해 죽어서 나오는 현상이 바로 개체 수 과잉 현상이다. 버리는 사람도 문제지만, 기를 사람도 없는 동물이 끝도 없이 태어나는데도 손 놓고 있는 국가가 더욱 문제다. *참조 Marsh, P. (2010). Replacing myth with math: using evidence-based programs to eradicate shelter overpopulation. Town and Country Reprographics, Inc Rowan, A., & Kartal, T. (2018). Dog Population & Dog Sheltering Trends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imals : an open access journal from MDPI, 8(5),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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