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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줘야겠다" 통보 받은 과학도들 ..."의대 갈 걸 후회"

2023.09.23 04:30
"정부 연구비 삭감에 따른 예산 부족으로 금년까지 하고 나가주면 좋겠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납득하고 사표 내는 게 맞는 걸까요? 버티면 미움받겠죠?"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박사후연구원(포닥)으로 일하는 A씨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계약기간이 1년 넘게 남았는데 이달 초 갑자기 일자리를 잃을 처지에 몰렸다. 또 다른 출연연의 박사후연구원 B씨 역시 "내년 여름까지 있기로 했었는데, 올해까지만 일하게 돼서 사기업에 지원 중"이라고 했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의 후폭풍이 시작됐다. 적잖은 연구실에서 내년 예산의 불확실성 때문에 박사후연구원이나 대학원생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장관이 직접 과학자들을 만나며 달래기에 나섰고 여당은 일부 R&D 예산 조정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지만, 현장 혼란은 이미 확산되는 모습이다. 과학계는 정부의 일방적 R&D 예산 삭감 발표가 이공계 이탈과 의대 광풍을 부추길 거라고 우려한다. “너 몇 년 차지? 5년? 그러면 2월까지 졸업해.” 생명과학 대학원 석·박사 통합과정에 재학 중인 김모씨는 이달 초 교수로부터 갑작스럽게 졸업을 준비하란 통보를 받았다. R&D 예산 삭감 발표 이후 연구실 재정이 어려워질 거란 이유에서였다. 통합과정은 졸업까지 평균 8년이 걸린다. 졸업하려면 적게 잡아도 3년은 남았는데, 내년 2월 연구실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김씨는 “연구 계획이 다 무너졌고 갑자기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며 한탄했다. 연구실의 다른 박사과정생들도 졸업 시기가 당겨졌다. 정부는 내년 R&D 예산을 깎겠다고 해놓고,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 예산을 얼마만큼 줄일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고 있다. 결국 연구책임자들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연구실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한다. 연구를 놓을 순 없으니 박사후연구원이나 대학원생 수를 줄이는 방법 말곤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출연연에 이어 대학원까지 흔들리면서 이공계 학생들은 동요하는 분위기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황모씨는 "앞으로 연구자로 일하려면 국내보다 해외로 나가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수도권 대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서모씨는 "의대에 가지 않은 게 후회된다"고까지 했다. 서울대 이공계열에 합격해도 지방 의대 가려고 반수, 재수, 삼수까지 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R&D 예산 삭감은 정부가 재정이 어려우면 연구비부터 감액하고 기초과학은 홀대한다는 인식을 심어준 셈이 됐다고 과학자들은 비판했다. 이공계 인재들 사이에서 자연대, 공대보다 역시 의대가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굳어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이공계 대학 교수는 "과학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뭐하러 과학을 하냐, 오지 마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출연연의 한 연구책임자는 "저와 일하는 포닥과 학생들에게 사명감을 갖고 과학도의 길을 가자고 자신 있게 말을 못하겠다"며 "의학, 치의학 전문대학원으로 빠진 옛 친구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후배들 사기가 꺾이는 걸 차마 못 보겠다는 그는 자신의 인센티브 절반을 포닥, 학생들과 나눴다. 지난해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이공계 석·박사과정생 규모는 2025년부터 본격 하락해 2050년 전후 현재의 절반 수준이 된다. 졸업자 수는 2030년 전후 2만 명 미만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안 그래도 연구인력 감소 추세가 뚜렷한데, 이공계 이탈이 가속화한다면 국가 경쟁력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기초연구 환경 확립'을 약속한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와도 엇박자다. 이참에 대학원생 인건비 지급 구조를 개선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학생 인건비는 연구책임자가 정부 부처나 산업체로부터 수주한 연구과제의 연구비에서 참여 비율에 따라 떼어주는 방식이다. 과제 규모가 축소되면 대학원생이 받을 수 있는 인건비도 줄어든다. 과기정통부는 "학생 인건비 의무지출 비율을 상향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현장에선 정부가 학생 인건비 기준 금액을 높여도 지도교수가 참여 비율을 낮추면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이동헌 KAIST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이공계 연구자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지금도 어려운 결정"이라며 "(R&D 예산 일방 삭감 같은) 이런 정책이 누적되면 우수 인력들이 이공계를 선택하지 않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방 소재 대학에서 기초과학을 가르치는 한 교수는 "유사 연구 중복, 관리 소홀 같은 부작용은 차단하면서 기초연구 투자는 꾸준히 이어갈 수 있도록 다부처 국가 R&D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때, 최고의 반도체 제조업체였다가 선두를 빼앗겼던 (미국) 인텔이 전면 복귀에 필요한 궤도에 올라왔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상 인정하는 모양새다. 부활의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회사 측 판단 분위기를 그대로 수용한 시각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절대 권력을 누렸던 인텔의 ‘프리미엄’이 고려된 진단으로 읽혔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렸던 '인텔 이노베이션 2023' 행사에서 내비쳤던 인텔의 향후 청사진에 대한 로이터통신의 총평이다. 이날 행사에선 인터넷과 끊어진 상태의 노트북이 테일러 스위프트풍의 음악을 생성하고 사용자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까지 연출됐다. 클라우드 컴퓨팅을 이용, 슈퍼컴퓨터 도움 없이 자체 가동이 가능한 생성형 인공지능(AI) 탑재 덕분이다. 로이터통신은 이에 대해 “올해 12월에 출시될 인텔의 차세대 노트북 프로세서인 ‘미티어레이크’에 내장된 새로운 AI 데이터 처리 기능과 인텔에서 배포할 새로운 소프트웨어 툴 덕분에 가능했다”고 전하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몰락한 공룡 기업으로 치부됐던 인텔이 재도약의 고삐를 죄고 나섰다. 전면엔 비밀병기인 1.8나노미터(1㎚=10억 분의 1m)급 공정 기반의 반도체원판(웨이퍼) 시제품을 내세웠다. 이날 소개된 인텔의 1.8나노급 웨이퍼가 가져온 의미는 상당했다. 그동안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분야 경쟁사인 대만의 TSMC나 한국의 삼성전자에 비해 멀찌감치 뒤처졌던 기술적인 부분을 대등한 수준까지 끌어올렸다는 측면에서다. 인텔은 또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활용한 첫 노트북용 중앙처리장치(CPU)까지 선보였다. 인텔도 초미세공정에선 필수 장비로 알려진 EUV 장비 도입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셈이다. EUV 노광 장비는 그동안 TSMC와 삼성전자에서만 상용화에 성공한 설비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일각에선 벌써부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판도변화까지 점쳐진다는 섣부른 예상도 제기된다. 사실 인텔의 이번 깜짝 발표가 가져온 함의는 적지 않다. 시련의 가시밭길을 걸어온 끝에 나온 결과물로 보이면서다. 글로벌 시장에서 ‘반도체 제국’을 구축했던 인텔의 지난 50년은 말 그대로 철옹성에 가까웠다. 컴퓨터(PC) 핵심 부품인 마이크로프로세서 반도체 칩의 독점 공급으로 세계 시장을 독식했다. 전 세계에 출시됐던 대부분의 전자제품엔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내장됐다. 1971년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한 이후, 인텔의 막강한 시장 지배력은 최근까지 이어졌다. 메모리반도체부터 CPU와 서버칩을 비롯해 주요한 칩의 업계 표준 또한 인텔에 의해 설계됐다. 하지만 그렇게 꽃길만 걸어왔던 인텔은 2000년대 중반부터 위축된 PC 시장만 고수, 대세였던 모바일 시장을 간과한 끝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PC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의 핵심 경쟁력은 ‘고성능’이었지만 모바일에선 ‘저전력’으로 판이하게 달랐던 포인트를 놓쳤던 것. 인텔은 이후에도 체질개선의 타이밍을 실기하면서 뒷걸음질만 쳤다. 2021년 1월, 당시 구원투수로 등판한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공식 석상에서 기술력 부족까지 시인해야 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했던 인텔의 굴욕적인 양심 고백에 가까웠다. 그랬던 인텔에도 기회는 찾아왔다. 중국과 치열한 패권 전쟁에 나선 미국이 반도체를 전략적 자산으로 지목,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 결정을 내리면서다. 이 가운데 지난해 말부터 오픈AI의 ‘챗GPT’를 계기로 불어닥친 생성형 AI 시장 열풍 역시 인텔엔 또 다른 변곡점으로 다가왔다. 장담할 순 없지만 질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인 조짐도 감지되고 있다. 인텔의 올해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가량 줄어든 129억 달러(약 16조5,442억 원)로, 6개 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2분기 순이익은 15억 달러(약 1조9,237억 원)를 기록, 전년 동기에 가져왔던 4억5,400만 달러(약 5,822억 원) 적자에서 벗어났다. '인텔 이노베이션 2023'에 참석한 팻 겔싱어 CEO는 "우리는 'AI 개인용 컴퓨터'를 기술 혁신이란 측면에서 상전벽해의 순간으로 보고 있다"면서 “AI가 반도체와 소프트웨어에 바탕을 두고 성장하는 경제인 '실리코노미'(Siliconomy)를 견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시장조사업체인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세계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에서 TSMC가 56.4%로 1위에 마크된 가운데 삼성전자는 11.7%로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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