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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린처럼 숨겨진 위기의 징후를 감지하는 소설

입력
2020.11.19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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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백수린 '여름의 빌라'

편집자주

※ 한국일보문학상이 53번째 주인공 찾기에 나섭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백수린 작가. 문학동네 제공

백수린 작가. 문학동네 제공


백수린의 소설은 평온하다. 그가 안전한 세계를 그려서가 아니다. 울퉁불퉁한 세계에서 더듬더듬 나아가는 인물들이 나오지만, 소설을 끌고 가는 목소리가 침착하고 따뜻하기 때문이다. 백수린 소설에 ‘따뜻함의 미학’이라는 개성을 부여하는 이 지점은 인생을 낙천성이나 안온함으로 품는 태도와는 결이 다르다. 시선의 침착함, 통찰과 관조 사이에서 사유를 느슨하게 풀거나 혹은 바짝 조이며 조율하는 자세가 ‘따뜻함의 미학’이 발생하는 조건이다.

‘아주 잠깐 동안에’는 연애와 결혼을 거쳐 평범한 중년의 부부가 되기까지 인물들의 시간을 짚어보는 이야기인데, 인물들은 쓸쓸함과 고독, 일상의 균열을 감지한다. 작가는 인물들이 감지한 문제를 까발리듯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인물들이 안고 있는 ‘균열’이 그의 걸음에 맞춰 먼 곳에서부터 ‘같이’ 오고 있었다는 듯, 놀랄 일이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풀어낸다. 카메라가 앵글을 잠시 그림자 쪽으로 돌려 보여주듯이. 일상의 이면, 평안함의 뒤통수를 심상하게 드러낸다.

백수린의 소설이 우아하다면, 바로 이 지점이 우아함이라는 품격을 획득하는 대목일 것이다. 작가는 반전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듯 그저 능청스럽게, 늘 있었으나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쪽을 가리킨다. “우리는 안고 있어도 왜 이렇게 고독한 것일까”, 독백하는 일, 백수린은 우리가 일상에서 수시로 겪는 ‘찰나의 동요’를 포착하고 고요해서 평안해 보일 지경인 ‘동요의 순간’을 정교한 솜씨로 빚어낸다.



백수린의 소설은 인생의 어느 계기마다 도착하는 허기와 슬픔, 일상에 숨은 지뢰와 같은 위태로움을 담고 있다. 안온한 날들에 편린처럼 숨겨진 위기의 징후들. 우리가 모르는 가족의 낯선 얼굴, 돌아가신 할머니의 연애와 이별,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 존재하는 일의 고독, 평범한 인물이 잊은 줄 알았던 성적 욕망을 꺼내보는 순간에 그 징후들은 돌출한다. 중요한 건 이후도 이전도 아닌, ‘징후’를 발견하는 찰나다. 징후는 어느 지점이 아니라 이야기 전반에 도사리고 있기에 백수린의 소설은 매순간이 클라이맥스다.

백수린 소설에는 뜨거움이 아닌 온기가 흐르고, 차가움 대신 서늘함으로 채워진다. 그 이야기는 특별한 사건을 품지 않는다. 작중인물은 현실의 굴곡이나 일상의 균열을 겪는 가운데 극단으로 치달리지 않고 감정의 낙차를 견디며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가 삶에서 더 자주 겪는 일은 지진이 아니라 저 먼 지층에서 보내오는 지진의 징후들이다. 일어난 일과 일어날 일 사이에서 지진 계측기 역할을 하는 게 소설이라면, 백수린 소설은 현실의 저 먼 안쪽에서 보내오는 변화의 징후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드러낸다.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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