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 우리말 지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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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우리말 지도는?

입력
2022.08.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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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신서유기8' 영상 캡처

'주스'와 '트로피컬'의 차이가 무엇인가? 둘 다 남의 말이지만 주스와 트로피컬은 다르다. 이미 발음조차 한국말인 주스는 외래어이고, 트로피컬은 이와 구별하여 외국어이다. 외국어는 번역할 대상이다. 어느 나라에나 외국에서 빌려오는 말은 있다. 문화가 오가고 문물이 전해지면 말은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말로 할 수 있는 말조차 외국에서 빌려온 말이 앞서면 한 사람의 머릿속 지도도 크게 바뀌게 된다.

얼마 전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에서 '훈민정음 윷놀이'를 방영했다. 윷놀이란 윷을 던져 나온 만큼 말을 움직이고, 그 말이 모두 나면 이기는 놀이이다. '훈민정음 윷놀이'는 그 놀이를 우리말로만 이어가 보는 것인데, 만약 도중에 영어계 말이 나오면 움직이던 말을 빼앗기는 규칙이 있었다. 사실 윷놀이는 한국 전통 놀이이고, 도·개·걸·윷·모·뒷도 등이 모두 우리말이니 모두들 순우리말로 이끌어 가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영어로 된 외래어, 외국어가 없을 때, 영어를 몰랐던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한 놀이이니, 그렇다면 영어 없이 충분히 해볼 수 있지 않겠나?

그런데 그 놀이를 마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게임, 팀, 파이팅 등 영어계 외래어가 계속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와우, 아웃, 오케이, 노터치, 하이라이트 등 참여자들이 집중하고 신경을 써도 입에 붙은 말은 계속 나왔다. 이 놀이를 따라 해본 대학생들도 6시간이 걸려서야 마쳤다고들 했다. 외래어조차 쓰지 못하는 억지 상황에서 모두 배꼽을 잡으며 즐긴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그날 출연자들과 시청자들이 알게 된 것은 이 말들이 우리에게 어느새 입에 익어 있더라는 것과, 입에 붙은 이상은 아무리 신경을 써도 쉽게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말 쓰기가 이제는 그렇게도 힘들어진 것일까?

아기는 사람이다. 그러나 스와힐리어에서는 아기를 사람이 아닌 물건을 가리키는 말로 지칭한다. 스와힐리어에서는 말을 못 하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말을 못 하는 한 인간이 그 사회의 말을 배워가는 과정이 성장이다. 아기가 태어난 그곳의 말을 배우지 못하면 그 사회에서 더불어 소통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훈민정음 윷놀이'는 다소 과장된 행사였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말을 쓰고 있는지 스스로 자각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아울러 바라건대, 우리가 그러한 경험을 하기 전에 자신이 하는 말을 한 번 걸러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미향 영남대 글로벌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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