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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토 16세 선종] 천주교 교리·전통 수호···사임 용단으로 교회 쇄신 길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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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토 16세 선종] 천주교 교리·전통 수호···사임 용단으로 교회 쇄신 길 열어

입력
2022.12.31 18:55
수정
2022.12.3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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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9일 이탈리아 바티칸의 광장에 나온 베네딕토 16세의 모습. AP 연합뉴스

2014년 10월 19일 이탈리아 바티칸의 광장에 나온 베네딕토 16세의 모습. AP 연합뉴스

"나는 이제 순례자로서 마지막 인생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2013년 2월 28일 신도들 앞에서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가톨릭 최고 지도자인 교황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종신직인 교황이 건강 문제를 이유로 사임했다는 사실은 교계를 흔들었다. 혼란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교황의 용단은 그 자체로 가톨릭 쇄신의 길을 여는 본보기였다. 1415년 그레고리오 12세의 사임 이후 무려 598년 만에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온 교황으로 기록된 베네딕토 16세가 95세를 일기로 31일(현지시간) 바티칸에서 선종했다. 교황청 대변인은 이날 "명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오전 9시 34분에 바티칸에서 돌아가셨다고 슬픔 속에 알린다"고 밝혔다.

독일 출신으로 본명이 요제프 라칭거인 고인은 교황으로 선출되기 이전에 요한 바오로 2세의 신학적 보좌역을 맡았고 1981년부터 교리를 수호하는 교황청 기관인 신앙교리성의 장관직을 지냈다. 이후 2005년 4월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서 제265대 교황직에 올랐다. 교황 취임 당시 나이가 78세로 270여년만의 최고령 교황이자, 교황 하드리아노 6세 이후 482년 만의 독일인 교황이었다. 고인은 그러나 8년 만에 건강 문제를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 지금까지 바티간에서 거주해 왔다.

2016년 6월 28일 베네딕토 16세(오른쪽)가 바티칸에서 열린 그의 사제 서품 65주년 기념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6년 6월 28일 베네딕토 16세(오른쪽)가 바티칸에서 열린 그의 사제 서품 65주년 기념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인은 급변하는 세상에서 가톨릭의 전통과 교리를 지키고 전파하려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젊은 시절엔 개혁적 신학자의 면모를 지녔으나, 1960년대 급진적 사상 조류가 유럽을 휩쓸자 가톨릭 교리를 수호하는 데 전력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는 임민균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적극적으로 신자들을 끌어안는 사목적 지도자라면 고인은 뛰어난 신학자 출신으로 교황을 지내면서도 학자적 자세를 보였다”면서 "(고인의 업적은) 가톨릭 전통 교리를 수호하면서 이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설명하고자 노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신론과 마르크시즘, 급진 페미니즘 등에 맞서 가톨릭 교리를 지키려는 고인의 입장은 그러나 시대적 변화를 거부하는 완고한 보수주의로도 인식됐다. 여성 사제 서품에 대해서도 그는 "우리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없다는 것이다"며 "예수님이 교회의 틀을 (모두 남성인) 12사도로 하셨다"며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교회의 틀은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 예수님이 세우신 것"이라는 논리였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한국일보 자료사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러한 고인의 보수적 면모는 후임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소탈한 모습과 대비돼 더욱 부각됐다. 짧은 재임기간에다 원칙적 입장 등으로 전임자나 후임자에 비해 교계 밖에선 인기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스스로 교황직에서 물러난 용단과 견결한 신학적 입장 등으로 신자들 사이에선 퇴임 후에도 상당한 존경을 받아왔다. 고인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입장을 달리하다가 화해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 ‘두 교황’이 제작돼 뒤늦게 대중적 관심도 끌었다. 개인 성향을 떠나서 천주교 교리 자체가 보수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고인이 전임, 후임 교황에 비해서 특별히 더 보수적인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교회 부패 척결에도 팔을 걷었던 교황은 재임 기간 교계 내 아동 성추행 사건이 연이어 불거지자 여러 차례 사과하며 대처하려 노력했다. 그의 재임 기간 400명 이상의 성직자가 파면됐다. 하지만 과거 뮌헨 대교구장 재임시 미성년자 성학대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돼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고인은 올해 2월에도 “나는 가톨릭교회에서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었다”면서 “내 재임 기간 여러 곳에서 발생한 학대와 오류에 대해 그만큼 더 큰 고통을 느낀다”고 사과했다.

요한 바오로 2세나 프란치스코 교황과는 달리 고인은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으나 교황청을 방문한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을 만났다. 2006년에는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고(故) 정진석 대주교를 추기경에 임명했다. 지난 2007년에는 한국의 이산가족 재결합을 위해서 기도하고 신도들에게 남북 정상 회담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당부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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