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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고 싶다··· 도시 공해가 된 '정당 현수막'

입력
2023.06.24 17:0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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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외광고물법 개정 이후 난립하는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 있지만 ‘유명무실’

옥외광고물법 개정 이후 유동인구가 몰리는 교차로, 지하철 입구, 횡단보도 등에 정치인들의 초상이 크게 인쇄된 현수막이 경쟁적으로 내걸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상시적 선거운동’을 방불케 한다. 도시 경관을 점유한 그들의 얼굴을 모았다.

옥외광고물법 개정 이후 유동인구가 몰리는 교차로, 지하철 입구, 횡단보도 등에 정치인들의 초상이 크게 인쇄된 현수막이 경쟁적으로 내걸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상시적 선거운동’을 방불케 한다. 도시 경관을 점유한 그들의 얼굴을 모았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법원검찰청 사거리에 형형색색 정당 현수막이 아래위로 나붙어 있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법원검찰청 사거리에 형형색색 정당 현수막이 아래위로 나붙어 있다.

‘내가 모르는 선거철이 도래하기라도 한 걸까? 원래 정치 현수막이 이리도 많았던가?’

언제부턴가 거리를 가득 메운 정당 현수막들을 보며 한 번쯤 떠올려봤을 물음이다. 지난해 말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옥외광고물법)이 개정·시행되면서 정당은 신고·허가 필요 없이, 수량·장소 제한 없이 현수막을 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정당 활동 자유를 폭넓게 보장한다’는 당초 명분과 달리 일방적 주장이나 특정 대상에 대한 비난·조롱, 개인 홍보 등을 담은 형형색색 현수막들이 공공장소에 난립하기 시작했다. 거리의 풍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강남사거리 일대가 군소 정당의 초대형 현수막들로 도배돼 있다. 가장 큰 현수막은 치수가 세로 4m, 가로 10m에 달한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강남사거리 일대가 군소 정당의 초대형 현수막들로 도배돼 있다. 가장 큰 현수막은 치수가 세로 4m, 가로 10m에 달한다.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사거리 횡단보도 인근에 정당 현수막들이 내걸려 있다.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사거리 횡단보도 인근에 정당 현수막들이 내걸려 있다.

‘시각적 소음’과 ‘메시지 공해’를 유발하고 시민들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은 전국적인 민원 대상이다. 건축사 김모(32)씨는 "수준 이하의 과격한 내용을 담은 현수막이 거리를 뒤덮으며 도시 경관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법 시행 후 3개월 동안 정당 현수막 관련 민원이 2배 이상 증가했다. 또한 보행자가 현수막에 걸려 넘어지거나, 현수막 끈을 묶은 가로등이 쓰러져 차량이 파손되는 등의 안전사고도 8건 발생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8일 정당 현수막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마련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어린이·노인·장애인 보호구역에서는 정당 현수막을 걸 수 없고, 보행자나 운전자의 시야가 가리지 않도록 끈의 가장 낮은 부분이 2m보다 높아야 하며, 가로등(가로수)에 2개 이상 설치할 수 없다.

행정안전부가 정당 현수막 문제를 해결하고자 설치·관리 가리드라인을 마련했지만 실제 현장에선 유명무실하다. 가로등이나 가로수에 2개 초과해 설치하지 않는 게 가이드라인 조항이지만 대여섯 개씩 걸려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행정안전부가 정당 현수막 문제를 해결하고자 설치·관리 가리드라인을 마련했지만 실제 현장에선 유명무실하다. 가로등이나 가로수에 2개 초과해 설치하지 않는 게 가이드라인 조항이지만 대여섯 개씩 걸려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19일부터 이틀간 은평구, 종로구, 강남구, 서초구, 영등포구 등 서울 8개 구의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현황을 확인했다. 유동 인구가 몰리는 교차로에 들어서면 예외 없이 정당 현수막이 나타났다. 지하철역이나 백화점, 시장 인근에선 현수막 설치 밀도가 더욱 높았다. 규정을 복수로 위반한 채 버젓이 걸려 있는 정당 현수막도 상당수 확인됐다. 은평구 불광초등학교 인근 A사거리는 어린이 보호구역임에도 불구하고 2개 이상의 정당 현수막이 2m보다 낮은 높이로 가로수 하나에 묶여 있었다.

지난 19일 서울 은평구 불광초등학교 인근 어린이보호구역에 정당 현수막이 규정보다 낮은 높이(약 1.6m)로 설치돼 있다.

지난 19일 서울 은평구 불광초등학교 인근 어린이보호구역에 정당 현수막이 규정보다 낮은 높이(약 1.6m)로 설치돼 있다.

또한, 현수막을 제작할 때는 정당의 명칭과 연락처, 게시 날짜 등을 현수막 세로 길이의 10% 크기로 눈에 잘 띄게 작성해야 하는데,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대신 후원 계좌번호 또는 국회의원과 지역 당협위원장의 얼굴 사진들이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수량과 규격에 대한 제한이 없다 보니 특정 정당이 한 장소에만 25개의 현수막을 걸거나(서초구 대검찰청 인근 반포대로), 세로 4m × 가로 10m짜리 초대형 현수막 여러 개가 대로변에 걸리는 경우(강남구 강남역 사거리)도 있었다. 게시 기한을 어긴 정당 현수막도 다반사였다. 어느 아파트 입구에는 지난 총선에서 맞붙었던 지역 국회의원과 타 정당 당협위원장의 현수막이 나란히 게시 기한을 넘긴 채 방치돼 있었다(중구 지하철 6호선 버티고개역 인근 도로).

지난 21일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 입구에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맞붙었던 지역 국회의원과 타 정당 당협위원장의 현수막이 나란히 게시 기한을 넘긴 채 방치돼 있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 입구에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맞붙었던 지역 국회의원과 타 정당 당협위원장의 현수막이 나란히 게시 기한을 넘긴 채 방치돼 있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사거리에서 바닥 가까이 설치된 현수막 앞으로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사거리에서 바닥 가까이 설치된 현수막 앞으로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강남사거리 일대가 군소 정당의 초대형 현수막들로 도배돼 있다. 가장 큰 현수막은 치수가 세로 4m, 가로 10m에 달한다. 장노출 촬영.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강남사거리 일대가 군소 정당의 초대형 현수막들로 도배돼 있다. 가장 큰 현수막은 치수가 세로 4m, 가로 10m에 달한다. 장노출 촬영.

현재 국회에서는 난무하는 정당 현수막에 대한 규제 기준을 담은 옥외광고물법 재개정안 6건이 발의돼 있다.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던 당사자들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스스로 만들어 통과시킬 수 있을지, 만약 통과된다면 그 법이 온전히 지켜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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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에겐 말을 타고 달리다 '멈칫' 말을 세우고 내려 뒤를 돌아보는 오래된 의식이 있었습니다. 발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하상윤의 멈칫]은 치열한 속보 경쟁 속에서 생략되거나 소외된 것들을 잠시 되돌아보는 멈춤의 시간입니다.

하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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