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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디쓴 '시럽급여'

입력
2023.07.1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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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 개선 문제를 놓고 여야 간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17일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실업급여 신청 창구가 분주하다. 연합뉴스

실업급여 개선 문제를 놓고 여야 간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17일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실업급여 신청 창구가 분주하다. 연합뉴스

실업급여가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고용보험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의 공통된 관심사다. 이 관심사는 여러 질문으로 세분화할 수 있을 텐데, 그 가운데 정책 입안자에게 핵심 사안이자 일반인도 호기심을 가질 법한 질문이 요즘 우리 사회에서 뜨끈한 현안이 됐다. '실업급여 수급자는 과연 재취업을 하고 싶어 할까.' 당정이 실업급여 하한액 하향 내지 폐지 방안을 공론화하려 열었다가 일부 참석자의 '시럽급여' '샤넬 선글라스' 발언이 수급자(특히 청년·여성) 폄훼 논란으로 번진 지난 12일 공청회 얘기다.

저 질문은 '실업급여는 노동시장에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는가'로 바꿔 물을 수 있겠다. 세계적으로 회자되는 사례는 2003년 핀란드의 실업급여 개편이다. 실업급여 규정 간소화 차원에서 일시불 퇴직금 제도를 폐지하되 일일 급여액을 150일 동안 15% 올리는 것이 골자였다. 이게 주목할 만한 정책 실험이 될 수 있었던 건, 바뀐 제도가 특정 집단(장기근속 실업자)에 한해 적용되면서 기존 제도하 실업자 집단과의 비교를 통해 정책 효과를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널리 인용되는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업급여 인상은 수급자 재취업 확률을 17% 낮췄다.

국내 실업급여 제도를 두고도 같은 주제의 연구가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등재 논문으로 한정해도 지난해 이래 최소 6건이 발표됐다. 넉 달 전 나온 최신 논문(이찬희·권기헌)은 한국복지패널 통계를 분석해 실업급여가 수급자의 재취업, 근로일수, 근로소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진은 핀란드 사례와 마찬가지로 '실업급여는 구직 의지를 약화한다'는 이론을 뒷받침하는 결과로, 국내 선행연구 다수와 상통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여당도 이처럼 '믿는 구석'이 있으니 실업급여를 보다 박하게 줘야 한다고 입장을 모았을 것이다. 2017년만 해도 10조 원을 넘었던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이 수급자 증가로 지난해 적자 전환한 현실적 사정도 있다. 고용노동부는 12일 공청회에서 2016년 120만 명에게 4조7,000억 원이 지급됐던 실업급여가 재작년에는 178만 명에게 12조 원이 지급됐으며, 수급자 재취업률도 2015년 31.9%에서 지난해 28.0%로 하락했다고 경보를 울렸다.

이쯤 되면 실업급여와 수급자 재취업 사이의 경향성을 부인하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는 의문은 저 두 변수를 잇는 인과 고리가 정녕 도덕적 해이인가 하는 점이다. 마침 지난해 말 나온 논문(이준석·정주원)은 이런 질문에 시사점을 준다. 연구진은 어떤 근로자가 실업급여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은지에 관심을 두고 한국노동패널 통계를 분석했다. 가장 명백한 결론은 당신이 비정규직이라면 수급자가 될 확률이 정규직일 때보다 2배 높다는 점이다. 직업윤리가 어떻든 노동시장에서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반감 또는 배가 된다는 것이다.

올해 3월에 나온 또 다른 논문(김민정)은 우리나라 청년 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이유를 탐색한다. 연구자는 국내 실업급여 초기액이, 유지 기간이 짧기는 해도, 소득대체율 기준 높은 수준이라고 판단한다. 과연 '시럽급여'라고? 한국 청년층에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높은 고용 유연성과 함께 비정규직 쳇바퀴를 완성하는 바큇살이다. 정규직 진입 장벽은 높은데, 직장에서는 쉽게 잘리고, 실업급여 떨어지기 전에 급히 취업하느라 질 나쁜 일자리를 돌고 돌아야 하는 처지라는 얘기다.

이훈성 사회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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