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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 퇴영과 잔류 사이

입력
2023.08.1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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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경기 수원시 아주대 기숙사에 머물던 캐나다 잼버리 대원들이 출국을 위해 공항버스를 타려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오전 경기 수원시 아주대 기숙사에 머물던 캐나다 잼버리 대원들이 출국을 위해 공항버스를 타려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개막 닷새째인 지난 5일 영국이, 그다음 날은 미국이 각각 야영지를 떠났다. 온열환자가 100명 넘게 나오는데 피할 곳 없는 폭염, 부족한 데다 지저분하기까지 한 화장실 등이 퇴영 원인이었다. 대부분 10대 청소년인 대원들의 철수 결정엔 가족의 요구도 작용했을 것이다. BBC방송과 같은 영국 매체가 앞다퉈 보도한 대원 부모들과의 인터뷰에선 탄식과 분노가 쏟아졌다.

영국 대원들이 새만금을 떠나던 날, 독일과 스웨덴 스카우트 대표단은 야영장에 남겠다고 선언했다. 두 유럽국이 각자 설명한 잔류 이유는 대동소이했는데 공통 이유 중 하나는 참가 대원들이 그러길 원한다는 것이었다. "잼버리에 참여할 기회는 한 번뿐이며, 참가를 멈추면 이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빼앗는 것"(스웨덴 대표단)이라는 자못 비장한 설명도 따랐다.

이 대조적인 풍경이 공교롭게 요즘 읽고 있는 책과 맞물렸다. 미국 경제학자인 마티아스 도프케와 파브리지오 질리보티가 함께 쓴 '기울어진 교육'은 주요국의 양육 방식을 비교하고, 그 차이의 원인을 통계적으로 실증한 연구서다.

저자들은 부모가 자녀의 선택에 맡기는 '허용적 양육'과 자녀의 성취를 중시하며 학업과 생활에 개입하는 '권위적 양육'을 구분하면서 스웨덴과 독일을 전자, 미국과 영국을 후자의 대표 국가로 거론한다. 책에는 독일로 이사한 미국인 엄마의 사연을 다룬 언론 보도가 인용돼 있다. "독일 부모는 자기들끼리 모여 커피를 마신다. 아이들이 20피트 높이(6m) 정글짐에 매달려 있는데도 말이다!" 스웨덴은 이런 독일을 두고 "양육 방식이 너무나 가혹하고 독재적"이라며 기겁하는 나라다.

어떤 양육 방식이 옳다거나, 그래서 잼버리 야영장을 떠나는 게(혹은 남는 게) 현명했다거나 하는 주장은 할 생각도 없거니와 온당치도 않다. 다만 한국적 양육 방식을 저 양쪽 유형 어딘가에 넣어야 한다면 스웨덴보다는 영미와 어울릴 것 같다. 새만금의 열악한 환경이 알려지자 한국 대원 부모들이 야영장 입구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장면도 소소하게나마 근거로 삼을 만하다. 보다 즉각적으로 떠오른 건 교권 침해 논란으로 번진 학부모 민원 문제였지만 말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저자들의 성(姓)을 보고 눈치챌 수 있겠지만, '기울어진 교육'에는 각각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여러 나라를 경유하며 자녀를 키운 저자들의 개인적 경험이 정교한 통계 분석과 어우러져 있다. 질리보티 교수가 '스웨덴식 프로토콜'이라 명명한 아이들 싸움 해소 방식은 이렇다. "때린 아이가 맞은 아이의 심정에 공감하게끔 부드럽게 설득한다. 이어서 두 아이가 한 번 끌어안고 나면 상황 끝. 부모들은 대수롭지 않게 이렇게 말한다. '그저 아이들인 걸요.'" 세 아이를 미국 시카고의 독일국제학교에 보내는 도프케 교수는 자녀가 학교에서 다쳤을 때, 미국인 부모는 학교의 상세한 경위 설명과 대책을 기대하지만 독일 교사는 "못 봤어요"라며 어깨를 으쓱할 뿐이라고 유머러스하게 설명한다.

경제적 풍요라는 점에선 별반 다를 바 없는 구미 선진국 사이에 문화 충격을 동반할 만큼 양육 방식에 차이가 나는 이유를 저자들은 '불평등 정도'와 '교육에 대한 투자 수익'의 격차로 설명한다. 어떤 대학에 진학해서 어떤 직업을 갖는지로 천양지차 인생이 빚어지는 사회에서 부모는 아이 곁을 맴돌며 보호와 독려를 극대화하는 '헬리콥터 부모'가 되기 쉽다는 것. 교사와 학부모의 대결로만 교권 침해 문제를 재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훈성 사회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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