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기 '달러의 힘'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 9일 워싱턴DC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미국 통화정책을 관장하는 연준의 결정에 따라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거린다. 미국의 통화이자 국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통화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 달러의 위상 때문이다. 워싱턴 DC AP=연합뉴스
200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는 동북아 안보지형을 뒤흔들었다. 미국이 꺼낸 카드는 북한과 불법 금융거래가 의심되는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와 미국 금융기관 간 거래 중지였다. 발표 1주일도 안돼 BDA 예금 3분의 1이 빠져나갔고 마카오 당국은 이 은행에 예치된 북한산 귀금속 수출대금 2,500만 달러를 동결시켰다. 싱가포르, 스위스 등 다른 나라 은행들도 미국을 의식, 일제히 북한과 금융거래를 중단할 정도로 후폭풍이 거셌다. 제재가 풀려 북한이 이 돈을 돌려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4년. 세계 최고의 폐쇄국가도 결코 달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홀로 버틸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베스트셀러 '지정학의 힘'의 저자 김동기(63) 변호사의 신간 ‘달러의 힘’은 세계의 금융과 경제의 혈액과도 같은 달러의 역사를 훑어가며 미국 경제패권의 실체를 보여준다. 영국에 대항해 파운드를 몰아내고 달러를 찍어 화폐주권을 세우려 했던 건국 시기 미국인들의 투쟁사, 일종의 중앙은행인 미합중국은행 설립을 둘러싼 19세기 미국의 정치적 갈등, 전후 마셜플랜을 통해 미국이 국제적 리더십을 확보하면서 달러가 기축통화로 우뚝 서는 과정 등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65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세계사와 국제 경제의 흐름을 ‘달러’라는 키워드로 꿰어가는 저자의 유려한 글솜씨 덕분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금융민족주의를 앞세운 중국의 런민비 국제화 노력, 미국 제재를 받는 러시아의 탈달러화 시도, 천문학적 재정적자에 따른 미국의 재정능력에 대한 회의 등 '달러패권주의'에 대한 도전도 만만치 않다. 달러 체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저자는 명쾌한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하나 그의 당부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달러 체제의 미래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더 깊게 살피고 그 동향을 지켜봐야 한다.”
달러의 힘· 김동기 지음·해냄 발행·656쪽·3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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