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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용의 해'... 옛날 사람들은 상상 속 용의 모습을 어떻게 알고 그렸을까?

입력
2024.01.04 04:30
수정
2024.01.04 08:56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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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미술사에 남겨진 상상 속의 존재 '용'

편집자주

아무리 유명한 예술작품도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텅 빈 감상에 그칩니다. 한 장의 그림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맛있게 그림보기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림 이야기입니다. 미술교육자 송주영이 안내합니다.

6세기 말~7세기 초 고구려의 강서대묘 널방 동쪽 청룡 벽화, 1912년 현장 조사 시 그린 벽화 모사도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6세기 말~7세기 초 고구려의 강서대묘 널방 동쪽 청룡 벽화, 1912년 현장 조사 시 그린 벽화 모사도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2024년 새해다. "갑진년(甲辰年) 새해에는 더 많은 복을 누리고 건강하시라"는 덕담을 많이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갑진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육십갑자 두 글자로 표기되는 연도는 입춘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갑진년의 상징은 푸른 용이다. 새해가 되면 육십갑자에 따른 동물과 그 색을 따져보는 것은 그 자체로 재밌지만, 미술과 문화를 공부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열두 가지 띠 동물 그림은 미술사와 문화사 연구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십이지 중 유일한 상상의 동물, 용

12종의 동물로 구성된 십이지(十二支)가 아시아만의 문화일까. 사실 숫자 12로 표현하는 동물 상징은 전 세계 모든 문화권에 있다. 우주를 이루는 12개의 별자리, 1년을 만드는 12개월, 밤과 낮의 12시간에서 알 수 있듯 12는 시공을 표시하는 중요한 숫자다. 고대인들은 우주가 운행하며 만들어지는 계절 변화와 시간의 비밀이 숫자 12와 관련 있음을 알았고, 이를 이해하기 쉽게 주변의 흔한 동물에 빗대어 설명했다. 서양에는 그리스 신화의 올림푸스 열두 신, 예수의 열두 제자가 있었고, 동양에선 불교, 도교, 유교와 혼합되며 나온 것이 십이지다. 지역에 따라 토끼 대신 고양이, 돼지 대신 사슴인 경우가 있는데 익숙한 동물로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용은 중국 문화권에 속한 모든 지역에서 나타난다. 용은 바빌로니아 지역에서 시작해 인도, 중국을 거치며 전파됐고 십이지에 가장 늦게 포함됐다. 중국에 불교가 유입되면서 인도의 ‘나가’(naga·뱀신)가 용으로 변했다는 견해가 있다. 기원전 중국 남부지역은 아열대성 기후였기에 거대 파충류가 실제 존재했다는 설도 있고, 공룡의 화석 기원설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가설만 있을 뿐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는 용. 그렇기에 관련 유물이 더욱 중요하다. 현실에 없는 동물을 어떻게 상상해서 그렸는지 살펴본다면 시각예술 창작과정에 대한 미학적 연구가 되고, 용을 그린 그림들을 살펴본다면 동서문화 교류의 미술사적 탐구가 되기 때문이다.


백마 탄 기사가 무찔렀던 악의 상징, 서양의 드래건

영어 단어 '드래건(dragon)'은 용으로 번역되지만, 사실 드래건은 용과 다르다. 영국 할머니에게 용에 대해 아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것은 날개가 있으며 불을 뿜는 사악한 존재”라고 대답할 것이다. 반대로 중국 할아버지에게 드래건에 대해 아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희고 긴 수염을 펄럭이며 천상으로 날아오르는 신성한 존재”라고 할 것이다. 판타지 장르에 익숙한 아이들은 용이라고 하면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반려동물 같은 존재를 상상할 것이다.

19세기까지 서양에서 드래건은 공포의 상징이었다. 바빌로니아에 처음 등장한 거대 파충류 괴수는 이후 중동, 인도, 아프리카, 아메리카 지역 전역에서 다리와 날개가 없는 큰 뱀으로 묘사됐다. 기독교 문화와 섞이면서 드래건은 악의 상징, 사탄 그 자체로 형상화됐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유혹한 뱀에게 다리가 있었기에 서양인들은 드래건에게 다리를 주었고, 어둠을 상징하는 박쥐의 날개를 붙였다. 여기에 불까지 내뿜으며 세상을 지옥처럼 만든다고 상상했다. 대체로 날개는 서양 의 용인 드래건의 특징이다. 서유럽 지역에서만 익룡 화석이 출토됐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12세기부터 서유럽에서는 백마를 탄 기사가 드래건을 죽이고 공주를 구했다는 ‘세인트 조지와 드래건' 이야기가 화가들의 단골 주제였다. 십자군 갑옷을 입고 악마를 처단한 기사는 하나님의 권능을 대변하는 구원의 상징으로 그려졌다. 특히 러시아 미술사에는 많은 드래건 그림이 있는데, 러시아가 칭기즈칸 몽골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시절에 그려진 드래건은 중국 용처럼 날개가 없는 거대 뱀 모양이었다가 18세기 이후부터 유럽식 드래건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14세기 후반 러시아 작자 미상의 '성 조지와 드래건'. 몽골에서 해방됐지만 유럽 문화보다는 아시아 문화에 더 가까웠던 시기로 다리와 날개가 없는 아시아의 용에 가깝다.

14세기 후반 러시아 작자 미상의 '성 조지와 드래건'. 몽골에서 해방됐지만 유럽 문화보다는 아시아 문화에 더 가까웠던 시기로 다리와 날개가 없는 아시아의 용에 가깝다.

유럽 르네상스 시기에 그려진 드래건 그림 중 라파엘로 산치오(1483~1520)와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의 작품은 백미로 꼽힌다. 작은 나무판에 유화로 그린 라파엘로의 드래건 그림은 특유의 섬세함으로 유명하다. 루벤스의 드래건 그림은 높이 3m가 넘는 대작으로 압도하는 웅장함이 일품이다. 화가들은 살았던 시대의 의상과 실제 풍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했고, 익숙한 동물 모습을 조합해 현실에는 없는 새로운 드래건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라파엘로 산치오, 성 조지와 드래건, 목판에 유화, 28.5x21.5㎝, 1506년. 워싱턴DC 국립미술관 소장

라파엘로 산치오, 성 조지와 드래건, 목판에 유화, 28.5x21.5㎝, 1506년. 워싱턴DC 국립미술관 소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 성 조지와 드래건, 캔버스에 유화, 309x257㎝, 1605~1607년.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 성 조지와 드래건, 캔버스에 유화, 309x257㎝, 1605~1607년.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관념의 형상화 vs 형상의 관념화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볼 수 있게 형상화한 것이 이미지와 그림이다. 이미지의 창작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창작, 그리고 직관과 감각을 바탕으로 하는 창작으로 나눠볼 수 있다.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나는 본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 것을 그린다"고 했다. 이것이 관념을 형상화하는 창작이다. 앞서 보았던 드래건 그림처럼 익숙한 동물 부분을 조합해 창작한 새로운 이미지가 오래 반복되면 하나의 ‘도상(icon)’이 된다. 문화의 전파는 반복과 첨가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

반대로 어떤 형상을 관념화하는 창작도 있다. ‘파레이돌리아(Pareidolia)’ 현상이다. 파레이돌리아는 구름이나 번개, 낯선 소리 등에서 동물이나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는 심리 현상을 뜻한다. 천둥 치는 밤하늘에 번쩍이는 번개를 보며 고대인들은 용을 상상했을 것이다. 거대한 뱀 모양으로 굽이치는 강줄기나 호랑이나 소가 누운 듯한 산 모양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곤 한다. 누군가의 상상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구전되면서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된다. 서아시아에서 시작한 거대 뱀에 대한 상상은 서양에선 무서운 괴수 이미지가 됐고, 동양에선 신성한 권력의 이미지가 됐다.


생존을 위한 물과 권력의 상징, 동양의 용

19세 후반에 등장한 청의 국기, 일명 '황룡기(黃龍旗)'. 1862년부터 1912년까지 사용됐다.

19세 후반에 등장한 청의 국기, 일명 '황룡기(黃龍旗)'. 1862년부터 1912년까지 사용됐다.

‘아시아의 용'이라 하면 19세기 청나라 국기(國旗)의 청룡을 떠올릴 것이다. 중국에서는 기원전부터 용에 대한 기록이 시작됐지만 문화적으로 용이 큰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수나라와 당나라 이후다. 이때부터 용은 국가 최고권력자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뿐만 아니라 유목 민족들과 한반도, 일본에 이르기까지 용은 왕실만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한정판 상징’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용 관련 유물이 나오는 시기는 삼국시대 이후다. 용에 대해 하루 종일 떠들어도 모자랄 만큼 그 종류도 다양하고 내용도 방대한데, 서양 드래건이 주로 기독교 문화와 결합했던 반면 동양의 용은 불교, 유교, 도교, 여기에 각 지역의 토속신앙까지 합쳐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동양의 용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신성한 신적 존재로서 농경사회에서 중요한 물, 즉 치수(治水)와 관련이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에서 엿볼 수 있듯 한국의 용은 ‘물의 신’에 가깝다. 국토의 삼면이 바다인 환경 때문일까. 바닷속 용궁을 용왕이 다스린다는 건 무척 친숙한 이야기다. 조선시대 아이들의 한자 교본 '훈몽자회'는 ‘용 용(龍)’ 자를 ‘미르 룡’이라 했는데, 미르는 물(水)의 옛말인 동시에 ‘미리, 앞서, 먼저’라는 뜻의 옛말과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미르는 용이 되기 직전 단계인 ‘이무기’라는 견해도 있다.

고려와 조선의 임금들은 중국 황제들처럼 용의 후예라 불리길 원했을 만큼 용은 권력의 상징이었다. 우리나라는 대대로 왕이 기우제를 직접 주관했는데, 기후변화를 감지하고 자연재해를 최소화하는 농경사회의 맞춤형 리더십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을 관장하는 용의 이미지는 정치적으로도 중요했던 셈이다.

반면 민간에서 용은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는 신선에 가까웠다. 조선 여성들이 정화수 앞에서 소원을 비는 것은 물의 신에게 행하는 예배였다. 용의 날이라 불리는 상진일(上辰日·음력 정원의 첫 진일) 새벽 첫닭이 울 때 여성들이 우물이나 샘에서 물을 길어오는 '용알뜨기' 풍속도 있었다. 현실의 삶이 잘되길 바라는 서민들의 염원이 용을 만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의 푸른 용

국내에 남은 용 관련 유물 중 하나만 고른다면 단연 고구려 강서대묘의 청룡 벽화다. 강서대묘의 사신도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고분벽화의 걸작으로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1983년 일본 나라현에서 발견된 기토라 고분과 연관성이 깊어 삼국시대와 일본의 교류를 살피는 학술적 가치도 높다. 강서대묘 널방(관이 안치된 방)의 네 벽에는 동청룡, 서백호, 남주작, 북현무가 그려져 있고 가운데 천장에는 황룡이 있다. 무덤 주인을 지키는 다섯 방위의 수호신으로, 중국에는 없는 고구려만의 독특한 형태다.

북한에 있는 강서대묘를 직접 탐사한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는 벽에 문신하듯 새겨진 제작기법과 석실 내부 습도까지 고려한 고구려인들의 독창성을 알렸다. 지난 2022년 복원미술 연구자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문활람씨는 고구려 고분벽화 재현기법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는데, 지난해 1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강서대묘의 사신도는 화강암 돌판 위에 돌가루 천연안료로 그리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기법”이라며 통상의 석회벽 방식과는 달리 울퉁불퉁한 요철 사이로 색을 스며들게 했기 때문에 사신도가 오래 보존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거친 화강암 벽을 뚫고 곧 날아오를 듯한 푸른 용의 모습은 백성을 위해 비를 내려주겠다는 열정적인 군주를 닮았고, 촘촘하게 들어찬 검푸른 81개의 비늘마다 이승의 행복을 비는 민중의 염원이 담겨 있다. 동쪽 푸른 바다 위로 용솟음치며 떠오르는 뜨거운 태양처럼, 생명의 원천인 물을 안고 날아오르는 푸른 용처럼,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2024년 갑진년엔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미술교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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