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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간 게이 88명 사망… 호주 경찰은 단속조차 안 했다

입력
2024.01.12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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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호주 시드니 동부 해안 게이 살인 사건
1970년대 중반부터 불특정 다수의 게이 폭행
성소수자 혐오적 사회·경찰 탓에 24년간 지속
"10대 불량배·육군·사복 경찰 등이 범행 가담"
"88명 사망·32명 미해결" 발표… 갈등 진행 중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호주 시드니 동부 해안의 '본디 해변'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호주 시드니 동부 해안의 '본디 해변'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호주 시드니 동부 해안은 전 세계 서핑 마니아가 찾는 관광 명소다. 도심과 차량 이동 시 불과 10분 거리인 데다, 넓은 해변에 큰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천혜의 자연을 갖췄다. 깎아지른 절벽과 해안선을 따라 울창하게 조성된 숲, 깨끗한 하늘과 강렬한 태양은 시드니 주민들의 자랑거리이자 추억이다.

그러나 희대의 살인마가 잡히지 않은 끔찍한 범죄의 현장이기도 하다. 1976~2000년 이 지역에선 최소 88명의 남성이 살해됐다. 불특정 다수의 가해자는 이곳을 지나가는 남성을 표적 삼아 폭행했고, 결국엔 목숨까지 빼앗았다. 둔기로 때리거나, 절벽에서 떨어뜨리거나, 목을 졸라 죽이는 식이었다. 가해자는 수백 명에 달하며, 몇 명씩 패거리를 이뤄 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수도 근교 관광지에서 24년간 범행이 이어져도 이렇다 할 단속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피해자가 사회적 혐오 대상이던 게이(동성애자 남성)였기 때문이다. 가톨릭 영향이 강하고 남성 우월주의 정서가 팽배했던 당시 호주 사회는 성소수자 중에서도 특히 게이를 향한 적개심이 강했다. 이런 분위기는 빈민가의 10, 20대 남성 청년들이 게이를 재미 삼아 폭행·살해하고, 경찰도 이를 묵인하는 결과를 낳았다.

최근에서야 호주 치안 당국은 “(게이들에 대한) 경찰의 혐오적인 태도 탓에 적절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경찰은 미제로 남은 사건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지만, 이미 때를 놓친 수사는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의 낙인, 성소수자 혐오에 기름 부었다"

호주 시드니에서 제1차 성소수자 축제(마디 그라스)가 열린 1978년 경찰이 한 참가자를 연행하고 있다. 호주 마디그라스 집행위원회 제공

호주 시드니에서 제1차 성소수자 축제(마디 그라스)가 열린 1978년 경찰이 한 참가자를 연행하고 있다. 호주 마디그라스 집행위원회 제공

호주 매체와 시민단체 조사 등에 따르면, ‘게이 살해’로 불리는 범죄의 주 무대인 시드니 동부 해안은 20세기 중반 시드니 게이들의 ‘정착촌’이었다. 호주는 1984년까지 동성애가 불법이었고, 가톨릭 교회와 정부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탄압했다. 1952년 가톨릭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호주 경찰청장을 지냈던 콜린 딜레이니는 “동성애는 가장 큰 사회악”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 결과 게이들은 빈민가였던 동부 해안 지역으로 밀려 나갔다. 역사학자 게리 워더스푼은 “(1970~1990년대) 시드니 동부 해안 지대는 게이들의 ‘게토’(강제격리 거주 지역)나 다름없었다”며 “경찰은 게이를 ‘변태’로 규정했고, 관용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게이 대상 범죄가 본격적으로 퍼진 건 역설적으로 1960년대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싹튼 이후다. 기성 질서에 의문을 품는 ‘히피 문화’ 영향으로 시드니에서도 성소수자 옹호 단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동부 해안에도 술집 등 상업 시설이 들어서며 게이 커뮤니티가 형성됐다. 배제와 차별에 짓눌리며 ‘음지’에서만 존재했던 게이들로선 비로소 숨통을 틔우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성소수자에 적대적인 사회는 게이들이 자유를 누리는 모습을 용인하지 않았다. 1978년 시드니에서 열린 1차 성소수자 축제(마디 그라스) 당시, 경찰은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참가자 53명을 연행했다. 1984년 뉴사우스웨일스주가 호주 최초로 동성애를 합법화했지만, 호주 정부는 3년 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상징하는 사신(死神)이 어린이들을 학살하는 내용을 TV 공익 광고로 내보내기도 했다.

2018년 호주 성소수자 시민단체 ‘ACON’(에이콘)은 시드니 동부 해안 게이 살인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정부의 태도는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 혐오 범죄에 기름을 부었다”고 평가했다. 에이콘은 총 88건으로 집계된 게이 피살 사건 중 절반가량이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중반에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남성성 과시 위해… '스포츠'처럼 게이 폭행

1987년 호주 국가후천성면역결핍증자문위원회(NACAIDS)가 제작한 TV 공익 광고에서 사신 모습으로 형상화된 에이즈가 호주 여성과 아이를 위협하고 있다. 이 광고는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 효과를 일으키며 광범위한 혐오 범죄를 유발했다. NACAIDS 제공

1987년 호주 국가후천성면역결핍증자문위원회(NACAIDS)가 제작한 TV 공익 광고에서 사신 모습으로 형상화된 에이즈가 호주 여성과 아이를 위협하고 있다. 이 광고는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 효과를 일으키며 광범위한 혐오 범죄를 유발했다. NACAIDS 제공

범행 유형은 제각각이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건 10, 20대 빈민가 청년들로 구성된 패거리의 행태다. 이들은 몇 명씩 몰려다니며 이 지역을 지나는 게이들을 무차별 폭행했다. 특히 얼굴이 잘생긴 사람을 내세워 술집에서 유혹한 뒤 숲으로 유인해 집단 폭행하는 수법을 주로 썼는데, 이는 동성애가 불법이었을 때 호주 경찰이 ‘동성애자 함정 수사’에 사용하던 방식이었다. 또 술집을 나와 길을 가던 사람을 미행해 습격하기도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당시 이 범죄는 ‘스포츠’로 불렸다”고 전했다. 스포츠처럼 재미로, 게이들을 폭행했다는 의미다. 게이 폭행이 남성성 증명을 위한 또래 집단의 ‘통과의례’ 였다는 분석도 있다. 호주 ABC방송은 “뉴사우스웨일스주 육군포병학교 소속 군인들은 게이를 공격하는 것을 자랑하고 ‘재미있는 게임’으로 생각했다”고 보도했다.

게다가 이 폭행 대다수는 ‘살인’을 염두에 둔 것처럼 잔혹했다는 게 최근 조사의 결론이다. 단순히 손이나 발로 때리는 것을 넘어서 조명, 야구방망이, 프라이팬, 드라이버, 망치 등이 동원됐다. 이 시기 시드니 근교 타마라마 마크스 공원에서 패거리의 습격을 받고 겨우 살아남았다는 앨런 로젠데일은 2022년 호주 9뉴스에 “가해자들이 둔기로 폭행하며 ‘너무 빨리 죽으면 시시하니까 천천히 하자’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타마라마 마크스 공원엔 성소수자 살해 범죄 피해자들을 기리는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다. 에이콘 제공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타마라마 마크스 공원엔 성소수자 살해 범죄 피해자들을 기리는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다. 에이콘 제공

특기할 만한 또 다른 범행 유행은 지인 간 살인이었다. 에이콘은 희생자 중 상당수가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평소 호감을 가졌던 지인이나, 게이 술집에서 새로 만난 사람과 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성적 호감을 표시했다가 맞아 죽은 것이다.

에이콘은 “가해자들은 ‘성적 접근에 대한 공포심에서 저지른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으나 폭행은 아주 잔혹하게 희생자의 사망 때까지 이뤄졌다”며 “비대칭적 폭력은 이 범죄가 동성애 혐오에 기반했다는 걸 보여 준다”고 짚었다. 일부 가해자는 훗날 “나 자신도 동성애자였지만 심리적으로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 결과 다른 게이를 살해하는 ‘자기혐오적 범죄’를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2015년 사건 조사를 위해 출범한 경찰 특별조사팀(Strike Force Parrabell)은 사망자가 최소 88명 식별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약 30명과 관련해선 범인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다만 현지 매체들은 자살 또는 실종으로 처리된 희생자가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게이 폭행' 신고했더니 "우린 그런 수사 안 한다" 윽박

호주 시드니 동부 해안에서 살해됐으나 경찰이 '자살'로 잠정 결론을 내렸던 스콧 존슨(오른쪽)의 생전 모습. 왼쪽은 스콧의 형인 스티브. 시드니모닝헤럴드 홈페이지 캡처

호주 시드니 동부 해안에서 살해됐으나 경찰이 '자살'로 잠정 결론을 내렸던 스콧 존슨(오른쪽)의 생전 모습. 왼쪽은 스콧의 형인 스티브. 시드니모닝헤럴드 홈페이지 캡처

사법 당국도 범죄를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호주 법원은 ‘성적 위협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가해자 측 변명을 수용했다. 살인이 아니라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형량을 감경해 준 것이다. 에이콘은 “호주 법률이 ‘동성 접근에 대한 방어권’을 인정하는 바람에 법원의 (자의적인) 감형이 가능했다”며 “이는 성소수자 혐오 논란이 제기된 끝에 2014년 폐지됐다”고 전했다.

경찰의 잘못은 더 크다. 범행의 '적극적 방관자'였다. 현지 매체들은 당시 경찰 내부에서도 성소수자 혐오 정서가 팽배했고, 이 때문에 범죄를 방조했다고 비판했다. 전직 시드니 경찰관 마크 히긴보트햄은 2022년 9뉴스에 “1980년대 게이 폭행 신고를 받고 사건을 정식 접수하자 상관이 ‘우리는 게이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다’며 윽박질렀다”고 폭로했다. 9뉴스는 폭행범 중 사복 경찰관 집단마저 있었다는 목격자 증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자살로 처리된 사건이 유가족의 문제 제기 끝에 살인으로 밝혀진 사례도 있다. 1988년 시드니 동부 절벽에서 숨진 채 발견된 미국인 스콧 존슨이 대표적이다. 호주 경찰은 당시 27세였던 그의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형인 스티브가 30여 년간 재조사를 요구했지만 경찰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미국의 정보통신(IT) 기업 대표로 성공한 스티브가 사설 탐정과 변호인단을 고용해 거듭 압박을 가한 이후에야 정식 수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2020년, 호주 경찰은 전처의 제보를 토대로 당시 50세였던 스콧 화이트를 재판에 넘겼고, 지난해 6월 호주 법원은 징역 9년을 확정했다. 스티브는 ABC·영국 BBC방송 인터뷰에서 “가해자들은 경찰이 처벌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기에 무차별 폭행을 저질렀던 것”이라며 “우리 모두 그때를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정부 조사위원장 "성소수자 혐오는 현재진행형"

석연치 않게 종결된 사건을 다시 조사하라는 목소리는 30년 이상 이어져 왔다. 2015년 경찰 특별조사팀 구성, 2019년 주의회 조사 개시는 희생자 유가족, 양심적인 일부 경찰관, 성소수자 인권단체 등이 노력한 결과다. 경찰은 2018년 보고서에서 “경찰 내 성소수자 혐오 정서가 있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의 ‘성소수자 혐오’가 여전하다는 비판도 있다. 2022년 4월 주정부는 경찰이 범인을 밝히지 못한 32건의 죽음에 대한 재조사에 나섰는데, 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존 사카르 뉴사우스웨일스주 대법관은 지난달 “호주 경찰이 아직도 적대적이거나 불필요하게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조사에 필요한 자료를 경찰이 위원회에 적절히 제출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사카르 대법관은 “현재까지도 경찰 내 저항이 있다”며 “뉴사우스웨일스주 경찰 중 어느 누구도 이 사건에 대해 공개 사과하지 않았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국일보는 한국기자협회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을 준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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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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