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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만에 영상 진단, 표본 아닌 전체 자료로 감사... "일 안 뺏기려면 AI 잘 다뤄야"

입력
2024.02.20 04:30
수정
2024.02.22 13:5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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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회계사보다 빠르고 정확한 AI
전문직, AI 경계하면서도 적응 몰두
AI 활용능력, 채용에서 중요해질 것
거부감 유독 큰 법조계도 변화 기대

편집자주

인공지능(AI)은 인간 노동자를 돕게 될까요, 아니면 대체하게 될까요. AI로 인해 새로운 직업이 생기기도 했고, AI와 인간의 경쟁이 촉발되기도 했습니다. 이미 시작된 노동시장의 '지각변동'을 심층취재했습니다.

이로운 인하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가 1월 26일 인천 중구 인하대병원 영상의학과 판독실에서 한국일보에 의학용 AI 기술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김예원 인턴기자

이로운 인하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가 1월 26일 인천 중구 인하대병원 영상의학과 판독실에서 한국일보에 의학용 AI 기술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김예원 인턴기자

흰 가운을 입은 이로운 인하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가 컴퓨터 앞에 앉아 엑스(X)선 영상 목록을 보기 시작했다. 위험 정도가 90%로 높게 평가된 환자의 영상을 켜니, 이곳저곳에 이미 동그라미가 표시돼 있었다. 흡연 습관과 고령 때문에 폐기종이 생긴 환자였다. 이 교수는 곧장 마이크를 들고 알아듣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의학 용어를 읊었다. 그러자 화면에 글자가 주르륵 입력됐고, 말을 마친 이 교수가 완료 버튼을 누르자 진단이 종료됐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1분이 채 안 됐다.

이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이 가능해진 건 인공지능(AI) 덕분이다. 의사가 살피기 전에 미리 AI가 환자들의 영상을 쭉 훑어보고, 문제가 감지되는 부분들을 추려 표시해두는 것이다. 정확도도 매우 높아 진료 경험이 많지 않은 의사나 의료 수준이 낮은 나라의 의사들보다 낫다는 평가까지 받는다. '사람 의사가 필요 없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위협을 충분히 느낄 법하다. 그래도 이 교수는 AI는 '더 나은 진료를 위한 도구'라는 데 방점을 찍었다.

지식과 경험으로 무장한 전문직 영역에서도 AI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데이터에 기반해 판단을 내리는 AI의 특성 때문이다. 실제 한국은행이 지난해 11월 발간한 'AI와 노동시장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AI가 특정 직업을 대체할 수 있는 확률을 정량화한 'AI 노출지수' 순위가 일반의사(상위 1% 이내), 전문의사(상위 3%), 회계사(상위 19%), 판사·검사·변호사(상위 21%) 등 전통적인 전문직에서 높게 나타났다. 선호도가 높은 유망 직종임에도 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직들 사이에선 AI에 대한 경계심을 놓지 않으면서도, 기술 발전에 적극 적응하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AI가 잘하는 일은 도움을 받고, 사람이 필요한 부분에 좀 더 집중하며 주도적으로 AI와의 '공존' 방식을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인공지능(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AI 노출지수)이 높은 직업과 낮은 직업의 분포. 의사, 회계사, 변호사 등 전문직은 다른 직업들에 비해 AI 노출지수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인공지능(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AI 노출지수)이 높은 직업과 낮은 직업의 분포. 의사, 회계사, 변호사 등 전문직은 다른 직업들에 비해 AI 노출지수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하루에 보는 영상 30개에서 70개로

김은경 용인 세브란스병원 병원장이 1월 31일 경기 용인에 있는 병원 판독실에서 의료 AI 기술이 어떻게 쓰이는지 설명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김은경 용인 세브란스병원 병원장이 1월 31일 경기 용인에 있는 병원 판독실에서 의료 AI 기술이 어떻게 쓰이는지 설명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의료계, 특히 진단 영역에선 AI 도입에 매우 적극적이다. AI 등장 전 영상의학과 의사들은 늘어나는 검사 건수 때문에 막대한 업무량에 시달려야 했다. 의사가 판독 내용을 녹음하면 이를 전사자가 듣고 판독문으로 옮긴 다음 의사가 컨펌하거나, 의사가 판독 내용을 일일이 손으로 타이핑해야 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영상을 하나하나 살피다가 피로가 누적되기 일쑤였다. 이로 인한 오진이나 시간 지연은 고스란히 환자의 피해와 불편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AI가 의사의 목소리를 텍스트로 자동 변환하고, 어떤 환자에게 질병이 얼마나 의심되는지까지 사전에 알려준다. 유방 전문 영상의학과 의사인 김은경 용인 세브란스병원장은 "수많은 검사자 속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데, 놓치면 치명적"이라며 "AI가 위험한 부분을 한 차례 스크리닝해 알려주면 실제 진단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했다.

김은경 용인 세브란스병원 병원장이 1월 31일 경기 용인에 위치한 병원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김은경 용인 세브란스병원 병원장이 1월 31일 경기 용인에 위치한 병원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효율성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 교수는 "과거에는 하루에 영상을 25~30개 정도밖에 못 봤는데, 이제는 60~70개도 본다"며 "남는 시간을 연구를 하거나 환자를 더 꼼꼼히 살피는 데 쓸 수 있어 긍정적"이라고 했다. 김 병원장 역시 AI 덕분에 병원 행정과 진단 업무를 병행한다. AI는 자칫 놓칠 뻔한 환자를 찾아내주기도 한다. 최근 국내 한 연구에 따르면 폐질환 진단을 받지 않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폐를 촬영하고 AI에 판독을 시킨 결과, 환자의 1%에서 폐질환이 의심됐고 이들 중 약 70%가 실제 양성으로 구분됐다.

의사들 사이에는 AI가 일자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 일종의 보조 도구가 돼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다 AI에 의존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김 병원장은 "진단은 영상뿐만 아니라 과거 병력과 가족력 등을 종합해 추론하는 과정이라 결국 최종 판단과 책임은 사람의 몫"이라며 "AI는 더 안전하고 정확한 검사를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판, 계산기, 엑셀, 다음은... AI

박원일 삼정KPMG 상무가 1월 29일 서울 역삼동 삼정KPMG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삼정KPMG 제공

박원일 삼정KPMG 상무가 1월 29일 서울 역삼동 삼정KPMG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삼정KPMG 제공

막대한 양의 정보를 다루는 회계업계 상황도 비슷하다. 통상 회계감사는 대상 자료(모집단) 중 샘플(표본)을 뽑아 살피는 방식이라 놓치는 부분이 생길 수 있지만, AI는 자료 전체를 오류 없이 감사할 수 있다. 업계는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AI를 활용한 '디지털 감사'를 사람 회계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도입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실제 삼정KPMG는 AI에 오류가 주로 발견되는 부분을 염두에 두고 전체 자료를 살피게 한 뒤, AI가 잘못됐을 가능성이 높은 부분을 짚어내면 사람이 집중 감사하는 식으로 일한다.

박원일 삼정KPMG 상무는 "기존 방식보다 70%가량 업무가 줄었고, 모든 자료를 볼 수 있어 정확성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과거 회계업계는 주판을 썼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계산기, 엑셀 등으로 도구가 바뀌었다. AI의 등장도 그 연장선이라고 업계는 본다. "일하는 방식이나 일에 필요한 역량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지, 일의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AI가 회계사를 대체하진 못할 것"이라고 박 상무는 예상했다.

이런 흐름이라면 앞으론 전문직이라도 AI를 잘 활용할수록 채용에 유리해질 전망이다. 이미 현장에 AI가 깊숙이 들어온 만큼, AI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보다 AI를 이용해 좀 더 고차원의 일을 할 수 있는 인력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과거엔 엑셀 잘 다루는 회계사가 각광받았지만, 이젠 데이터를 분석하고 AI를 활용하는 회계사를 더 많이 찾을 거란 얘기다. 이미 AI 교육을 하는 의과대학도 있다.

변호사와 AI의 공존, 머지않았다

'이-아브니르'가 프랑스에서 출시한 AI 변호사 앱 '이-아보카'가 프랑스 법조계의 반발로 이름을 바꿨다. 이-아브니르 엑스(X·옛 트위터) 캡처

'이-아브니르'가 프랑스에서 출시한 AI 변호사 앱 '이-아보카'가 프랑스 법조계의 반발로 이름을 바꿨다. 이-아브니르 엑스(X·옛 트위터) 캡처

전문직들 중 변호사 업계는 AI 기술 도입에 유난히 진통을 겪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판결문을 학습시켜 법률 자문을 해주는 '리걸 AI'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변호사 자격 없이 법률 자문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주장에 번번이 가로막힌다. 최근 프랑스에서 출시된 리걸 AI 앱 '이 아보카(I-avocat)'는 자연어(사람이 쓰는 언어)로 질문하면 이해하고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지만, 같은 이유로 프랑스 법조계의 반발을 샀다. 결국 해당 앱의 이름은 변호사를 뜻하는 '아보카'를 떼고 '이-리걸'로 바뀌었다.

국내 리걸테크 기업 로앤굿은 AI 기술을 활용한 법률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로앤굿 홈페이지 캡처

국내 리걸테크 기업 로앤굿은 AI 기술을 활용한 법률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로앤굿 홈페이지 캡처

국내에서 리걸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앤굿의 민명기 대표는 법률 산업의 특수성을 이유로 들었다. 법조계는 그간 기술 발전의 영향이 다른 분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의뢰인이 변호사를 오프라인에서 만나 상담하는 서비스 형태에는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듯 말이다. "법률가는 옳고 그름의 가치를 다루는 직업이라 사람이 아닌 존재의 개입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고 보인다"고 민 대표는 설명했다.

그래도 최근엔 국내에서 이런 장벽이 조금씩 무너지는 모습이 포착된다. 법원행정처가 재판 지연 문제 해소를 위해 AI 도입을 검토하는 등 정부가 전향적으로 나서면서다. 이를 정부 차원에서 리걸 테크를 수용한다는 신호로 시장이 받아들이면서 변화에 대한 기대가 생기고 있다.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결국 AI에 잘 적응한 변호사가 경쟁 속에서 두드러지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오지혜 기자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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