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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르포]기절 직전 세상이 뒤집어져 붉게 변했다... 전투기 조종사 훈련 체험[문지방]

입력
2024.03.0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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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김경준 기자가 직접 해봤더니]
공군 전투기 조종사 '가속도 내성 강화 훈련'
온몸 짓눌리고 실핏줄 터지고 정신 혼미해져
"크, 흡, 크, 흡"... 억지로 숨 참으며 한계 도전
중력의 6배인 '6G' 넘어서자 극도의 어지럼증
기절 직전 교관 목소리... '레드아웃' 고통 엄습
극한의 환경에서 신체 한계 극복하는 조종사들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머리 떨어지면 안 돼요! 턱 당기고 힘주세요! 호흡이 너무 빨라요! 천천히 하나, 둘, 셋!"

관제실에서 전하는 여성 교관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습니다.

하지만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고 있는 가속도내성강화훈련 장비에 탑승한 저는, 정신이 아득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첫 관문은 초당 0.1G(중력의 0.1배)씩 서서히 가속도를 높여가며, 맨몸으로 중력의 몇 배에 달하는 가속도까지 버틸 수 있는지를 시험해보는 '가속도 내성 확인' 테스트입니다.

3G를 넘어서니 압박이 꽤 심해졌습니다. 얼굴 피부가 짓눌려 처지는 느낌이 듭니다. 4G부터는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하고, 어지러워졌습니다. 5G 이상부터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하체에 힘을 꽉 주고 "크, 흡... 크, 흡..."하며 L-1 호흡법이라 불리는 특수한 방식으로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온몸은 마치 프레스기에 눌리는 듯 강한 압력을 받았습니다. 힘을 줘서인지, 식은땀인지 모를 땀이 이마에서 비 오듯 흘렀습니다. 훈련 전에 호흡법을 연습했지만 극도의 긴장감 속에 3초 간격 원칙을 무시한 채 쉬지 않고 "크헙"을 반복하며 공기를 들이마시기만 했습니다. 두 눈은 두개골 한가운데까지 밀려 들어간 느낌입니다. 평소 전방 180도인 시야는 경주마에 눈가리개를 씌운 것처럼 60도도 채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종석의 머리받이에서 살짝 뒤통수가 떨어지는 순간, 세상이 아래에서 위로 뒤집어지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극도의 어지럼증이 찾아왔습니다.

2월 28일 충북 청주 항공우주의료원에서 기자가 가속도내성강화훈련 중 중력의 6배(6G)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공군 제공

2월 28일 충북 청주 항공우주의료원에서 기자가 가속도내성강화훈련 중 중력의 6배(6G)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공군 제공

'이대로 기절하는 건가. 누군가는 황홀경을 경험하기도 한다던데...'

포기해버릴까 싶었던 찰나의 순간, 교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뒤통수를 강하게 뒤로 밀착시키고 눈이 튀어나올 듯 크게 떴습니다. 목구멍까지 찼던 숨은 한 번에 강하게 '컥'하며 뱉어낸 뒤 수초간 참았습니다. 허벅지와 엉덩이, 종아리에는 쥐가 날 정도로 힘을 꽉 주고 발판을 밀어냈습니다.

"자, 이제 조종간 놓으세요."

끝났나봅니다. 몸을 짓누르던 압력이 서서히 낮아집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세상이 위에서 아래로 고꾸라지는 듯한 현기증과 함께 눈앞이 붉게 물듭니다. 일명 '레드아웃'이라 불리는, 가속도가 낮아지며 머리 쪽으로 원심력이 작용할 때 생기는 현상입니다.

"호흡 끝까지 하셔야 돼요! 계속 힘 주세요!"

교관의 말에 다시금 긴장의 고삐를 당기고 정신을 집중했습니다. 드디어 평상시 중력 상태로 되돌아왔습니다. 머리가 띵하고 울렁거림이 몰려왔습니다.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습니다. 그때 청천벽력 같은 교관의 말이 들렸습니다.

"6.8G(중력의 6.8배)까지 버티셨네요. 자, 이제 6G에서 20초! 가속도 내성 강화 훈련 시작하겠습니다. 정 힘드시면 포기하셔도 됩니다."

이걸 또 해야 된다고요? 결국 하고 말았습니다. 훈련을 마친 뒤 두 다리만으로는 계단을 오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죠.

6G를 버티려면… 들숨 최소화 'L-1 호흡법', 그리고 하체의 중요성

지난달 28일 충북 청주에 있는 항공우주의료원에서 G-TEST라 불리는 가속도 내성강화 훈련을 받았습니다. 전투기 조종사를 비롯한 공중근무자가 다양한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받는 '비행환경적응훈련'을 국방부 출입기자들도 체험해보라는 공군의 배려(?) 덕분이었습니다. 진행된 이번 훈련은 △급격한 가속도 증가 △공간감각상실 △비상탈출 △고공저압환경에 대비할 수 있도록 짜여졌습니다.

훈련의 백미는 단연 가속도 적응 훈련! 영화 'R2B: 리턴투베이스'(2012)에 출연했던 배우 정지훈(가수 비)씨는 9G(중력의 9배)를 견뎌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공군 홍보대사인 가수 알리도 이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해요.

음속을 넘나드는 속도로 고속 선회나 급상승을 하는 전투기는 가속도에 의해 아주 강한 원심력과 중력을 받게 됩니다. 이를 중력(G)으로 환산한 것이 중력가속도. 예를 들어 체중이 70㎏인 사람은 6G 상태에서 420㎏이 되는 셈이죠.

그런데, 조종사들이 겪게 되는 난관은 단순히 체중 증가 효과가 아닙니다. 문제는 혈액순환. 가속도의 힘 때문에 동맥을 통해 하체로 보내진 피가 다시 심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죠. 이 때문에 뇌와 눈에 혈액 공급이 되지 않고 수초 만에 그레이아웃(시야가 좁아지고 흐려짐), 블랙아웃(시각 상실) 및 G-LOC이라 불리는 의식 상실에 이르게 됩니다.

기자가 가속도 내성 강화 훈련에 앞서 교관의 지도하에 L-1 호흡법을 연습하고 있다. 공군 제공

기자가 가속도 내성 강화 훈련에 앞서 교관의 지도하에 L-1 호흡법을 연습하고 있다. 공군 제공

전투기 조종사들은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AGSM(Anti G Straining Maneuver)이라 불리는 기술을 씁니다. 먼저 하체에 힘주기. 근육에 힘을 줘 인접한 정맥을 압박함으로써 인위적으로 혈액을 밀어올리는 거죠. 출근길 대중교통에서 아랫배에 통증이 찾아올 때 힘 좀 써보신 경험, 다들 있으시죠? 평생 흑역사로 남을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 위기를 벗어나려 온 힘을 허리 아래쪽에 집중했던, 그 경험을 떠올리시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시드니 레버렛(Sidney Leverett) 박사가 개발한 L-1 호흡법. 폐와 장기가 짓눌리는 걸 막기 위해 복근에 힘이 빠져선 안 됩니다. 그러려면 들숨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숨을 들이쉴 때 배가 볼록해지면서 복근에 힘이 빠지니까요. 숨을 참고 있다가 순식간에 내뱉고 다시 짧게 들이마시는 호흡법입니다. 그래서 "크, 헙"하는 소리가 나게 되는 거죠.

각종 에어쇼에서 멋진 곡예비행을 선보이는 '블랙이글스' 조종사들이 조종석에서는 이런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존경심이 듭니다. 전투기 조종사뿐만 아니라 공중 근무를 하는 모든 분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레드아웃'은 회피만이 살길… 영화 탑건 속 급강하 전투기의 배면 비행 이유

그런데 이런 베테랑 조종사들도 반드시 피해야 하는 가속도의 방향이 있습니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레드아웃' 현상을 초래하는 '마이너스 G'입니다. 즉 중력이 머리 쪽으로 작용하는 것이죠.

톰 크루즈가 출연한 영화 '탑건: 매버릭'(2022)에는 오목한 분지 지형에 위치한 목표물을 파괴하기 위해 급상승 후 급강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정점 고도에 이른 전투기는 급강하를 시작하면서 기체를 뒤집어 '배면 비행'으로 지면을 향해 곤두박질칩니다.

영화 탑건:매버릭에서 톰 크루즈가 기체를 뒤집어 비행하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탑건:매버릭에서 톰 크루즈가 기체를 뒤집어 비행하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지금까지 저는 멋있어 보이려고 그러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론 머리로 향하는 중력을 하체 쪽으로 바꾸기 위해 그래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체에 쏠린 피는 AGSM으로 끌어올릴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대처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추락하는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사람은 천장으로 몸이 솟구치겠죠. 즉 -G의 힘을 받는 상황입니다. 정상적으로 급강하하는 비행기 조종사도 같은 힘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사람이 물구나무를 선 상태라면? 머리 쪽으로 작용하는 가속도를 하체 쪽으로 반전시킬 수 있겠죠? 그래서 배면비행을 하면 -G를 +G로 바꿀 수 있고, AGSM을 통해 가속도를 이겨낼 수 있는 있는 것입니다.

실핏줄 터지고 전신 근육통까지… 계왕권을 꿈꿨던 기자의 최후

최대 9G까지 견뎌내야 하는 전투기 조종사들은 가속도 내성에 도움을 주는 G-SUIT(지-슈트)를 착용합니다. 하체에 착용하는 이 장비는 기체와 연결돼 자동으로 일정 가속도 이상이 되면 양측 종아리, 허벅지, 하복부에 달린 5개의 주머니에 공기가 주입되면서 AGSM을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실핏줄의 약한 부위가 점처럼 터지는 점성 출혈이 발생한 모습.

실핏줄의 약한 부위가 점처럼 터지는 점성 출혈이 발생한 모습.

가속도에 의해 혈액이 한쪽으로 쏠리는 경우 실핏줄의 약한 부분이 점 형태로 터지는 '점상 출혈'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근육의 힘으로 혈압을 제어할 수 있는 하체는 괜찮지만 주로 상체와 얼굴 쪽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저 역시도 갈비뼈 뒤쪽 등 부분에서 점상 출혈이 생겼습니다. 물론 전신 근육통도 함께죠. 기침만 해도 하복부를 쿡 찌르고 등을 옥죄는 통증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어렸을 적 즐겨봤던 만화 '드래곤볼'에서는 주인공인 손오공이 베지터와 싸우기 전 지구 중력의 10배에 달하는 계왕성에서 특훈을 하고 계왕권이라는 필살기를 얻었는데, 제가 얻은 건 점성 출혈과 근육통뿐이라는 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소리 없는 암살자 '저산소증'… 고고도 비행 시 '더러움'이 필수인 이유

기자가 비상탈출 훈련을 받기 위해 훈련 장비에 착석해 있다. 공군 제공

기자가 비상탈출 훈련을 받기 위해 훈련 장비에 착석해 있다. 공군 제공

비상탈출과 공간감각상실 대응 훈련은 넘어가더라도, 고공저압환경 대비 훈련은 꼭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산소의 소중함을 알게 해 준 시간이니까요. 지상 2만5,000ft(7.62㎞) 상공에서 별도의 산소 공급 없이 저산소증을 경험해봤습니다. 일반적으로 3~5분 정도 의식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의식이 희미해져가는 과정을 체험하기 위해 저는 구구단을 써내려 갔습니다. 산소마스크를 제거하고 약 2분이 흘렀을 때, 저는 7단을 쓰고 있었는데, 7X5=35를 쓰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99%였던 혈중 산소포화도는 2분 만에 68%까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신체의 급격한 변화 없이 서서히 정신을 잠식해가는 저산소증은, 공중 근무자에겐 암살자처럼 위험한 존재입니다.

모든 항공기에는 여압장치가 있어 기체 내 기압과 산소 농도를 유지하는데, 전투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여압장치가 고장 나면 신속하게 별도의 산소공급 없이 버틸 수 있는 마지노선인 1만ft(약 3㎞) 고도로 내려와야 합니다.

이 훈련에선 고도 상승으로 기압이 낮아지며 생기는 신체 변화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연발하는 방귀와 트림이죠. 외부 기압이 낮아져 상대적으로 체내 공기가 팽창하는데, 이게 위, 아래로 배출되는 현상입니다. 반면 고도가 낮아질 땐 체내 압력과 외부 기압의 불균형으로 귀가 멍해지고 통증이 수반되는데, 이때는 코와 입을 막고 강하게 볼풍선을 만드는 '발살바 호흡법'을 써야 신체 손상을 줄일 수 있습니다.

기자가 저압실 훈련 중 저산소증 체험을 위해 고도 2만5,000ft 환경에서 구구단을 적고 있다. 김광영 PD

기자가 저압실 훈련 중 저산소증 체험을 위해 고도 2만5,000ft 환경에서 구구단을 적고 있다. 김광영 PD

하동열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 훈련과장은 "조종사들은 극한의 비행환경에서 겪을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해 이해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전에 이처럼 지상에서 다양한 훈련을 실시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은 그저 입문 단계일 뿐, 조종사들은 훨씬 강도 높은 훈련을 수행한다고 해요. 그날 훈련센터 상공을 비행하는 훈련기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번 기회를 빌려 신체의 한계에 도전해가며 영토 수호를 위해 애쓰고 있는 모든 군인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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