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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 "찢으라" 했는데도 출간...'거장' 마르케스 유작, 읽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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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 "찢으라" 했는데도 출간...'거장' 마르케스 유작, 읽어도 될까

입력
2024.03.18 17: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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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르케스 유작 ‘8월에 만나요’
“찢어버려라”는 고인 뜻 반해 출간

콜롬비아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왼쪽)의 생전 모습. 멕시코시티=AP 연합뉴스

콜롬비아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왼쪽)의 생전 모습. 멕시코시티=AP 연합뉴스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의 세계적인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의 유작이 지난 6일 한국을 비롯한 30개국에서 동시 출간됐다. ‘8월에 만나요(En Agosto Nos Vemos)’라는 제목의 이 소설을 두고 생전 마르케스는 “원고를 찢어버리고 절대 출판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으나, 아들들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세계 문학계의 시선이 이 소설에 쏠린 이유다.

치매에 시달리면서도 말년까지 집필을 이어간 마르케스는 이 작품이 끝내 발표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전 세계에서 5,000만 부가 팔린 장편소설 ‘백년의 고독’을 쓴 마르케스 정도의 거장이라면 삶과 작품이 오롯이 개인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체코 작가 프란츠 카프카와 러시아계 미국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 등은 모두 작품을 폐기해달라는 요청이 사후 무시된 결과 오히려 명작을 남겼다는 점에 비춰보면 더욱 그렇다.

‘8월에 만나요’는 여성이 주인공인 마르케스의 유일한 소설이다. 어머니의 기일인 8월 16일마다 어머니 무덤이 있는 카리브해의 섬으로 떠나는 ‘아나 막달레나 바흐’는 “미지의 남자들과” 하룻밤을 보낸다.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매년 일탈을 반복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의 나이보다도 얼마 적지 않”은 중장년에 이르러서야 여성으로서의 욕망을 체현한 그는 일탈을 통해 다투기만 했던 어머니라는 여성과 조우한다.

마르케스의 아들 로드리고와 곤살라는 소설 서문에서 “독자들의 기쁨과 즐거움을 나머지 모든 이유보다 우선시하면서 가보(마르케스의 애칭)의 뜻을 어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선택에는 이 소설이 존재하는 한 언젠가는 출판될 ‘운명’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마르케스의 전작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출간 이전부터 해적판이 세간에 떠돌았고, 마르케스 연구자 구스타보 아랑고 등은 그의 유작을 출판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왔다. 또 다른 마르케스 연구자 알바로 산티나도 “불완전한 작품은 파괴된 작품보다 유용하다”며 유족의 선택을 옹호했다.

8월에 만나요·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민음사 발행·184쪽·1만6,000원

8월에 만나요·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민음사 발행·184쪽·1만6,000원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인도 작가 살만 루슈디는 지난해 이 소설의 출판 소식을 듣고 마르케스에 대한 배신이라면서 “승인돼서는 안 될 일이 승인됐다”고 지적했다. 고인의 명성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고, 실제 ‘8월에 만나요’가 전작에 비해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듯 보인다. 유족 역시 “아버지의 가장 훌륭한 책처럼 아주 완벽하게 다듬어지지는 않았다”고 인정했다.

미국 작가 마이클 그린버그는 미국 뉴욕타임스(NYT)에서 “마르케스의 작품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건강에 해로운 수준의 좌절을 유발한다”고 혹평했다. NYT는 문학계와 독자들 사이에서 이 소설을 “읽지 말아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다고 전했다. 반면 ‘8월에 만나요’의 한국어판 번역을 맡은 송병선 울산대 교수는 “마르케스의 마지막 소설을 읽지 않는 것은 ‘백년의 고독’의 마지막 장을 읽지 않고 건너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제 판단의 열쇠는 독자인 당신이 쥐었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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