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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250명 배에 선원 4명뿐... '화물 고정·승객 통제' 안전관리 빠듯

입력
2024.04.17 04:00
수정
2024.04.25 17:02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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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들의 10년]
<4>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시 쓰는 그날
안전 전문가와 여객선·지하철 점검해보니
선원 인력난에 승객 통제·짐 무게 확인 난감
"국가가 선박 관리하는 여객선 공영제 필요"
지하철도 '넓은 틈새·좁은 엘리베이터' 위험
"안전 민감도 높이고 지속적인 상호 감시를"

1일 전남 목포에서 흑산도와 도초도를 오가는 쾌속선에 승객들이 탑승하고 있다. 목포=왕태석 선임기자

1일 전남 목포에서 흑산도와 도초도를 오가는 쾌속선에 승객들이 탑승하고 있다. 목포=왕태석 선임기자

"세월호 참사 이후에 바뀐 거요? 글쎄요, 안전 점검하는 운항관리자가 늘어난 거 말고는…"

수천 개 섬 사이로 여객선 한 척이 파란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승객과 차량을 실은 배는 지난 1일 전남 신안 도초도에서 2시간 30분 걸리는 목포 북항을 향했다. 맨 꼭대기 3층 조타실에서 만난 선장 김모(47)씨의 손은 노련하면서도 분주했다. 폐쇄회로(CC)TV 관찰부터 운전, 방송 모두 그의 손에 달린 터였다. 정원이 250명인 이 배의 선원은 선장을 포함해 고작 4명. 최소 인원만 겨우 채웠다. "그날 이후 제도가 많이 개선됐다고 하는데, 상처가 완전히 나으려면 뿌리부터 뽑아 바꿔야죠."

대형 참사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비극은 갑자기 발생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쌓이고 쌓여 버티지 못하고 터져 버린 결과다. 참사 전에 이미 수십 건의 경미한 사고를 목격하고, 수백 번의 아찔한 상황을 경험했는데도, 이를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참사는 필연이다.

올해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0년, 대구 지하철 사고가 터진 지 21년이 됐다. 대략 10년 주기로 대형 참사를 겪었던 한국 사회는 이제 안전해졌을까. 더 이상 비극은 없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제대로 준비가 돼있을까.

한국일보는 4‧16재단 재난안전연구위원회 위원장이자 2‧18안전문화재단 이사인 ①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와 함께 선박과 지하철 안전 점검에 나섰다. 선박에는 노창균 목포해양대 교수가, 지하철에는 김훈배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이 동행했다.

1일 전남 목포항에서 흑산도 등 섬으로 운행하는 쾌속선 내부에 짐들이 결박되지 않은 상태로 적재돼 있다. 목포=왕태석 선임기자

1일 전남 목포항에서 흑산도 등 섬으로 운행하는 쾌속선 내부에 짐들이 결박되지 않은 상태로 적재돼 있다. 목포=왕태석 선임기자


흑산도·도초도 오가는 '뉴엔젤호' '도초카훼리호' 타보니

한국일보는 1일 목포여객터미널에서 흑산도까지, 그리고 흑산도에서 도초도까지 쾌속선인 뉴엔젤호를 탔고, 도초도에서 목포 북항까지는 차도선인 도초카훼리호로 이동했다. 오전 7시 20분쯤 여객터미널에서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목포운항관리센터 소속 운항관리자가 출항 30분을 앞두고 흑산도로 향하는 뉴엔젤호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쾌속선에 탑승한 항해사가 모든 과정을 함께했다. 선원들은 바코드스캐너를 통해 전산 발권된 승객들의 표와 신분증, 승선 여부를 일일이 확인했다. 형식적 확인에 그쳤던 세월호 참사 이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개선된 모습이다.

그러나 출항한 배에는 운항관리자가 적발하지 못한 위험이 상존했다. 배 안쪽에 쌓인 화물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배추, 참외 등 농작물을 비롯해 상자 30여 개가 결박되지 않은 채로 선박 한쪽에 쌓여있었다. 풍랑이 심할 땐 한쪽으로 쏠리거나 무너질 법했다. 그럼에도 승객들이 가져온 짐의 무게를 확인하거나 이를 신고하는 절차는 없었다. 운항관리센터 관계자는 "선박 회사별로 휴대품 중량과 용적 규정이 있지만 이를 확인할 인력이 안 되고 승객들 반발도 커서 자세히 살펴보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노창균 교수는 "KTX처럼 수하물을 고정할 수 있는 적재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가 정박하지 않았지만 승객들은 빨리 내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포=서현정 기자

배가 정박하지 않았지만 승객들은 빨리 내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포=서현정 기자

선원이 적은 탓에 승객들을 통제하기는 쉽지 않았다. 뉴엔젤호는 선장, 항해사, 기관장 등 선원 4명이 전체 승객 182명을 감당해야 했다. 조타실을 바삐 오가던 이들은 정차할 때 발판 대기, 차량 고박하기, 표 검사 등 배 안의 모든 일을 책임졌다. 이날 차량이 정박하기도 전에 10명의 승객이 배에서 빨리 내리기 위해 줄지어 서있었다. 기관장 박모(70)씨는 "지금은 날씨가 좋아서 괜찮지만, 기상 악화로 배가 많이 흔들리면 승객들 관리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차도선은 더욱 위험했다. 도초도에서 안전 점검에 나선 운항관리자는 차량을 배에 고박하며 작심한 듯 털어놨다. "정원 250명인 배에 고박 인원이 겨우 2명이에요. 차량을 하나하나 고박해야 되는데 시간에 쫓기고, 승객들은 왜 정시 출발 안 하냐고 항의하다 보니 성수기에는 고박이 제대로 안 된 채 출항하는 경우도 있어요."

목포와 섬을 운행하는 차도선에서 흑산도 한국해양교통안전공사 소속 운항관리자가 차량 고박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목포=왕태석 선임기자

목포와 섬을 운행하는 차도선에서 흑산도 한국해양교통안전공사 소속 운항관리자가 차량 고박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목포=왕태석 선임기자

304명이 숨진 대형 참사를 겪고도 해양사고는 매년 끊이질 않는다. 해양수산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의 해양사고 통계에 따르면, 2021년 2,720건이던 해양사고는 2022년 2,863건, 2023년 3,092건으로 증가 추세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던 2014년(1,330건)에 비하면 2.3배 늘어났다. 노진철 교수는 "운항과실, 주의의무 소홀, 취급 불량 등 인적 요인으로 사고가 늘고 있다"며 "특히 여객선의 경우 2016년 7월부터 안전관리책임자를 두고 있지만, 세월호와 같은 카페리 여객선이나 차도선은 화물 적재나 고박이 여전히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고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여럿 있다. 참사 후 얼마 뒤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안전불감증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선박 사고는 자신의 일이 되지 않을 것이란 승객들의 막연한 믿음과 사고가 나기 전까진 대충 넘어가는 위험 요인이 선박 내부에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노진철 교수는 "2019년 해양교통안전공단이 생긴 뒤 위험 요소가 모두 통제되는 것처럼 인식되면서, 개별 선박의 안전관리체계가 오히려 무뎌진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최소 인력으로 유지하는 해운업계의 경영 구조도 문제로 꼽힌다. 뉴엔젤호 선장 김모(74)씨는 "회사 입장에선 수입이 늘어야 신입을 채용하는데, 기름값은 비싸고 젊은이들은 처우가 안 좋아 여객선을 꺼리다 보니, 선장들이 고령화하고 회사는 최소 승무 정원인 3, 4명만 선원으로 채용한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배의 무게와 추진력 등에 따라 최소 승무 기준을 두고 있는데, 여객선의 경우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15명까지를 최소 승무 인원으로 두고 있다. 수천 명이 타는 대형 여객선도 선원 15명만 배치하면 운항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정년을 넘기고 들어온 선원들이 적지 않다 보니 안전 문제와 관련해 불합리한 점이 있어도 쉽게 따지기 어렵다. 선원은 "돌발 행동을 하는 승객이 있다는 이유로 출항을 미룬다거나 안전 점검 시간을 충분히 달라고 요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노창균 교수는 이에 대해 "영세한 선사들이 수익을 내지 못하는 현실을 깨기 위해선 여객선 공영제가 필요하다"며 "국가가 책임지고 선박들을 관리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8일 서울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에 진입한 열차와 플랫폼 사이의 간격이 23cm로 측정됐다. 역사 내부 사진은 금동관 역장 동행하에 취재됐다. 서재훈 기자

8일 서울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에 진입한 열차와 플랫폼 사이의 간격이 23cm로 측정됐다. 역사 내부 사진은 금동관 역장 동행하에 취재됐다. 서재훈 기자


화재·대피에 여전히 취약한 지하철

선박에만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로 198명이 숨진 뒤 내장재가 불연성 소재로 교체되고 소방훈련이 정례화됐다. 하지만 한국일보가 전문가들과 살펴본 지하철역 곳곳은 여전히 사고와 재난에 취약했다.

8일 찾은 서울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4-2 열차 칸이 열리자 열차와 플랫폼 사이로 공백이 드러났다. 기자가 직접 재보니 간격은 23㎝. 법적 기준인 10㎝를 훌쩍 넘어 성인 여성 발도 빠질 만했다. 서울지하철에서 아이, 노약자, 장애인 등 승객들의 발 빠짐 사고가 빈번한 이유다.

김훈배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은 "서울교통공사가 관리하는 296개 역사 중 높낮이 차, 틈새 개선 공사가 실시된 역사는 28곳에 불과하고 268개 역사는 (기준이 강화된) 2004년 이전에 설계돼 사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성신여대입구역은 곡선인 승강장과 일자인 전동차가 접촉하지 않는 선에서 플랫폼에 고무발판 등을 덧붙여 최대한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8일 서울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길음 방면에 있는 엘리베이터 출입문 너비는 80cm로 측정됐다. 90cm인 기준에 미달됐다. 서재훈 기자

8일 서울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길음 방면에 있는 엘리베이터 출입문 너비는 80cm로 측정됐다. 90cm인 기준에 미달됐다. 서재훈 기자

엘리베이터도 노약자나 장애인이 이용하기엔 좁다. 성신여대입구역 기준 길음 방향 승강장에 설치된 엘리베이터 출입문의 너비는 80cm였다. 최소 90cm라는 기준에 한참 모자랐다. 김 위원은 "2년 전 서울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50대 승객이 엘리베이터가 아닌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다 뒤로 떨어져 사망했는데, 전동휠체어가 들어가기에 엘리베이터가 너무 좁았다"며 "성신여대 역사 역시 이런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무인 전동차인 경전철은 더욱 위험했다. 역사별로 역무원이 한 명만 배치돼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는 탓이다. 이날 김포골드라인 김포공항역에서 퇴근시간에 만난 김모(30)씨는 "직원 호출을 눌렀는데 5분이 지난 뒤에야 온 적이 있다"며 "거스름돈을 받으려고 호출했지만, 만약 불이 나 사고가 났다면 아찔했을 것 같다"고 전했다.

8일 오후 6시 김포공항역에 사람들이 열차를 타기 위해 뛰어가고 있다. 김포시에서 투입된 인력들이 출근시간과 퇴근시간 에스컬레이터와 승강장 내 인원을 통제하고 있다. 서현정 기자

8일 오후 6시 김포공항역에 사람들이 열차를 타기 위해 뛰어가고 있다. 김포시에서 투입된 인력들이 출근시간과 퇴근시간 에스컬레이터와 승강장 내 인원을 통제하고 있다. 서현정 기자

지하철에 비해 규모가 작은 경전철은 업체와 역사에 전문인력도 적다. 예컨대 서울지하철 1~9호선에는 신호 통신, 전자, 시설, 전기 등의 부서에서 각각 20명 안팎의 직원이 있는 반면, 김포골드라인에선 신호, 통신, 전자 부서가 하나로 묶여 20명 미만이 일하고 있다. 기술 직원들이 자기 직렬의 업무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업무까지 도맡아 하는 셈이다. 김 위원은 "전문 분야가 아닌데도 책임져야 하고 유지보수까지 떠맡는다면 안전관리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선박과 마찬가지로 지하철도 여전히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운영하는 철도안전정보종합관리시스템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발생한 열차 사고 원인 가운데 운전사, 승무원 등 인적 요인 비중이 48.7%에 달했다. 노진철 교수는 "신차 도입이나 관제 인력 세대교체 과정에서 판단 미숙으로 인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현장 실습과 직원 교육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위기의 10년 주기설' 반복 안 되려면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안전 전문가들은 '참사에는 항상성이 있다'고 말한다. 사고 직후엔 정부나 지자체, 시민들이 경각심을 갖고 철저히 대비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쯤 되면 안전할 것'이라고 방심하면서 대응이 무뎌진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안전 민감도'를 높이고,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노진철 교수는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정부와 업체에서 재난 대응책을 마련하지만 이후 제대로 작동하는지 세밀하게 들여다보거나 직원들이 위험한 행동을 하는지 체크하는 데는 소홀하다"며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스스로 자기검열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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