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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여왕' 성공에 ‘이 예능 PD’ 있었다..."'팝콘 브레인' 세대가 빠질 만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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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여왕' 성공에 ‘이 예능 PD’ 있었다..."'팝콘 브레인' 세대가 빠질 만했네"

입력
2024.04.23 08:00
수정
2024.04.23 13:37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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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인데 기댈 수 있는" 백현우
'로맨스 드라마 남주인공 판타지' 변주
캐릭터쇼로 '시한부 사랑' 전형성 비틀어

우연 반복, 개연성 부실 지적에도
뜨거운 인기 배경엔 '쇼트폼 콘텐츠 유행'
2030 남성보다 10대 남성 시청률↑
"캐릭터 '밈' '짤' 취향 저격"
'팝콘 브레인' 세대가 흥행 변수로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홍해인(김지원·왼쪽)과 백현우(김수현)는 성 역할 반전으로 재미를 준다. 재벌 3세인 홍해인은 "나만 믿어"라며 백현우에 프러포즈한다. 백현우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tvN 제공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홍해인(김지원·왼쪽)과 백현우(김수현)는 성 역할 반전으로 재미를 준다. 재벌 3세인 홍해인은 "나만 믿어"라며 백현우에 프러포즈한다. 백현우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tvN 제공

21.6%.

21일 방송된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 시청률(전국 유료 가구 기준·닐슨코리아)이다. 자체 최고 시청률로 tvN 역대 드라마 중에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tvN 역대 시청률 1위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21.7%·2020년)의 턱밑까지 쫓아갔다. 16부작인 '눈물의 여왕'은 종방까지 2회가 남았다. 시청률이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꾸준히 오른 것을 고려하면 마지막 회에선 '사랑의 불시착'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23.7%·2019년)을 제치고 비(非)지상파 드라마 흥행 톱3에 오를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말 그대로 '신드롬급 인기'다.

표=이지원 기자

표=이지원 기자


현빈·박서준·이준호엔 없는 공감대

'눈물의 여왕'이 시청자 마음을 사로잡은 데는 독특한 캐릭터 설정이 한몫했다. 남자 주인공 백현우(김수현)는 '짠내 나는 왕자님'이다. '시크릿가든'(2010)의 김주원(현빈), '김비서가 왜 그럴까'(2018)의 이영준(박서준), '킹더랜드'(2023)의 구원(이준호)처럼 '백마 탄 왕자'로 등장해 판타지만 불어넣지 않는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로스쿨을 수석 졸업한 유능한 변호사이지만, 재벌가 처가살이를 하며 1년에 15번 있는 처가 제사 때마다 앞치마 두르고 주방에서 전 부치기 바쁘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건 이혼"이라며 코를 훌쩍이며 상담받으면서도 위기를 만나면 아내 홍해인(김지원)을 구하기 위해 맨주먹으로 차 유리를 깨부순다. 소설가이자 드라마 평론가인 박진규는 "백현우는 '을'인데 기댈 수 있고, 약자인데 듬직하다"며 "로맨스 드라마 속 흔한 '재벌남'과 다른 캐릭터 변주로 매력을 극대화했다"고 평했다. "안쓰러우면서도 설렌다"며 시청자들이 백현우에게 몰입하는 배경이다.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용두리 주민들. 주책 없는 모습으로 드라마의 감초 역할을 하고 있다. tvN 제공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용두리 주민들. 주책 없는 모습으로 드라마의 감초 역할을 하고 있다. tvN 제공


예능쇼 같은 배경 보니

조연 캐릭터들도 주인공 못지않게 특이하다. 용두리에서 오디를 따며 인지력이 떨어지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영송(김영민)은 홍해인의 고모 범자(김정난)를 집으로 초대해 홍차와 마들렌을 내놓고 '플러팅'(추파 던지기)한다. 시골에서 마들렌으로 다과를 꾸려 차에 적셔 먹는 노총각이라니.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내와 남편의 사랑'이란 이 드라마의 상투적 이야기 줄기는 이렇게 독특한 캐릭터들을 만나 예상치 못한 곳으로 뻗어 나간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 구축은 '눈물의 여왕'을 쓴 박지은 작가의 장기다. '별에서 온 그대'에선 선비 같은 외계인(도민준)을, '푸른 바다의 전설'에선 엉뚱한 인어(심청)를 선보였다. 예능 작가 출신인 그는 톡톡 튀는 캐릭터를 앞세워 '눈물의 여왕'을 쇼처럼 꾸린다. 전작인 '사랑의 불시착'(2019~2020)에서 커플로 출연해 부부의 연을 맺은 현빈·손예진의 실제 결혼식장과 같은 곳에서 백현우와 홍해인의 결혼식을 재현하고, "생색이라는 게 커피 쿠폰 같은 거예요. 도장 10개를 다 안 찍으면 네가 단골인 걸 몰라요" 등의 재치 넘치는 대사로 시청자의 눈과 귀를 쉴 틈 없이 사로잡는다.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눈물의 여왕'엔 KBS '개그콘서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서수민 PD가 기획에 참여했다. 박 작가와 서 PD는 KBS 드라마 '프로듀사'(2015)를 함께 만들었다. 예능 출신 작가와 PD가 '눈물의 여왕'에서 다시 만나 캐릭터 쇼의 시너지를 내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홍해인(김지원·앞쪽)과 백현우(김수현)의 모습. tvN 제공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홍해인(김지원·앞쪽)과 백현우(김수현)의 모습. tvN 제공


"쇼트폼 콘텐츠 같은 전략 쓰는 '눈물의 여왕'"

화려한 성공 뒤엔 그늘도 있다. 홍해인의 머릿속에 자라던 암세포는 한 번의 수술로 기억과 함께 말끔하게 제거되고, 그 기억의 공백을 틈타 윤은성(박성훈)은 '가짜 남자친구' 행세까지 하고 나선다. 백현우·홍해인 커플에 맺어진 과정에도 우연이 반복된다. 어린 시절 백현우는 바다에 빠진 해인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지만 둘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고 시간이 흘러 같은 회사에서 다시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한다. 둘의 인연을 부각하는 과정에서 이야기의 개연성과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허술해 보이는 구성에도 좀처럼 열기가 식지 않는 것은 15초∼1분 내외의 짧은 동영상 형식인 쇼트폼 콘텐츠의 유행과 무관하지 않다. 틱톡 등 쇼트폼 플랫폼에서 쉽고 짧으며 강렬한 영상에 길든 시청자들은 '이야기'보다 '캐릭터'에 더 몰입하고 그런 콘텐츠 소비 경향이 '눈물의 여왕' 인기의 원동력이란 해석이 나온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눈물의 여왕'이 캐릭터를 부각하는 방식이 강렬한 한 방으로 치고 빠지는 쇼트폼 콘텐츠의 전략과 비슷하다"며 "쇼트폼 콘텐츠 시대엔 메시지 중심의 전체 서사 구조화보다 캐릭터 중심의 에피소드를 병렬하는 방식에 소비자들이 더 관심이 많고, 그 흐름이 '눈물의 여왕' 인기와 맞닿아 있다"고 바라봤다.

이런 특성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눈물의 여왕'의 성별·연령별 시청률을 확인해 보니, 남성 10대(5.3%·14일 방송 기준)가 20대(4.3%)와 30대(4.9%)보다 높았다. 주말극은 연령대가 높을수록 시청률이 많이 나온다는 점, 10대는 유튜브에 더 친화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짤'이나 '밈'을 만들 수 있는 캐릭터 중심 드라마 연출이 10대 시청자의 취향을 저격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팝콘처럼 튀어 오르는 강렬한 자극에만 반응한다는 이른바 '팝콘 브레인' 세대들이 드라마 흥행의 '키'로 떠오른 셈이다.

새로운 세대의 등장에 드라마 제작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20년 넘게 드라마를 기획한 제작사 관계자는 "실시간 시청률을 지켜보면, 주인공 외 다른 인물들이 나오면 시청률이 확 꺾이는 게 보인다"며 "관심이 지속되는 시간이 너무 짧아 청춘 트렌디 드라마 같은 경우 주인공에 서사를 '몰빵'하고 편집도 유튜브 콘텐츠 스타일로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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