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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인적자원부'를 설치할 이유

입력
2024.06.10 00: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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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욱
신기욱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

편집자주

재미학자의 입장에서 한국의 사회, 정치, 경제, 외교.안보등에 관한 주요 이슈를 다루고자 한다.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반도의 모습과 상황을 진단하고 미래에 나아갈 방향을 글로벌 시각에서 제시하려 한다.


유럽 흑사병보다 심각한 저출산 위기
출산율 제고 대신 인적자원 확보 핵심
국민적 합의와 정책발상의 전환 필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9일 취임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중앙행정부처로 전환해 '저출생대응기획부'(가칭)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모습.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9일 취임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중앙행정부처로 전환해 '저출생대응기획부'(가칭)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모습. 뉴스1

정부는 최근 '저출생대응기획부'와 '저출생수석실' 신설을 발표하며 인구위기 대응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출산율은 0.72로 세계 최저 수준이며, 해외에서도 한국의 상황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 실린 한 칼럼은 한국의 인구 위기가 14세기 유럽인구 절반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보다 심각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의 노력은 고무적이지만 출산율 제고에만 집착해 문제의 핵심과 복합성을 간과할 염려가 크다. 십수 년간 수많은 자원을 쏟아부었음에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출산율의 반등을 기대하기도 어렵지만, 설사 그렇게 된다 해도 현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기약하긴 어렵다. 현 인구학적 위기는 저출산, 고령화, 두뇌유출의 삼각파도에 의한 복합적인 현상의 산물이다. 또 이 현상의 핵심은 인적자원의 축소로 인한 성장동력의 약화이다.

내년에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20%를 넘게 되어 '초고령 사회'가 되고, 2050년에는 40%에 달할 것이다. 2017년 73%로 정점을 찍은 생산연령인구는 2050년에는 51%로 감소할 것이다. 중소기업은 일손이 부족한데 청년실업률은 늘어나는 기형적 현상에다 인재유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헬조선'을 탈출하려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유학생들은 귀국을 꺼리는 추세이다. 정부의 정책은 이러한 복합적인 상황을 고려해 인적자원을 최대한 확보하고 미래의 성장 동력을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일본과 호주의 경험을 보자. 한국보다 한세대 앞서 유사한 위기를 맞은 일본은 여성인력의 활용과 이민확대를 주요 대처 방안으로 내세웠다. 아베 정부의 우머노믹스 등을 통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을 2000년 60%에서 2022년 75%로 끌어 올렸다. 적극적인 이민정책으로 유학 온 외국인 학생들의 졸업 후 일본기업 취업률은 꾸준히 증가하여 25% 정도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들이 영주 이민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적고, 숙련노동자들의 이민 역시 소수에 머무르고 있다. 여전히 외국인에 배타적인 문화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반면 호주의 경우 인구의 30%를 차지하는 외국 출신자들이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구의 고령화도 늦추고 있다. 한국, 일본에 비해 긴 이민의 역사를 갖고 있긴 하지만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백호주의'하에 비백인 이민자에게는 배타적인 국가였다. 그러나 노동력 부족과 인구 감소에 대처하기 위해 1970년대에 '다문화주의'를 선언하고 해외인재 유치에 적극 발 벗고 나섰다. 이젠 고용이나 임금면에서 호주와 외국출생자 사이에 차이가 없고, 외국인 중 80%가 시민권을 얻는다.

정부는 '저출생대응기획부'가 아니라 '인구·인적자원부'를 신설하여 국내외적으로 가용한 인적자원 확보에 역량을 집중하고 필요한 자원을 (재)분배해야 한다. 일손은 부족한데 청년실업률은 높은 모순을 바로잡아야 하고, 노동시장 참여율이 62%에 그치고 있는 여성인력을 더 활용해야 한다. 해외인재들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환경과 제도를 개선함과 동시에 해외로의 두뇌유출을 막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세계 인구는 향후 30년간 대략 20억 명이 증가할 것이므로 그만큼 해외인재의 풀도 커질 것이다.

갑작스레 닥친 흑사병과 달리 현재 진행 중인 인구학적 위기는 아직 대응할 시간이 있다. 하지만 출산율 제고에만 집착하는 단선적 사고와 대책에만 머무른다면 위기의 본질을 놓치고 또다시 실기할 우려가 크다. 인구소멸의 길로 가는 걸 막기 위해선 종합적 사고와 발상의 전환 그리고 자원분배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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